• 풀어야 할 문제들
  •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몇 가지 들어 봅니다.
  • 첫째, 지금 이 땅에는 산천초목, 금수곤충뿐 아니고 사람까지, 아니 사람부터 먼저 크게 생태가 바뀌고 있습니다. 도덕이 헌신짝으로 버려지고, 양심은 마구 짓밟히고, 그래서 아주 살벌한 세상이 되어 있습니다. 좀더 풀어서 말하면, 독재정권이 물러가고 문민이라는 정부를 거쳐 국민정부라고 들어섰지만, 사회정의라든가 올바른 삶의 길이라든가 하는 것은 아주 낡은 시대의 빛바랜 구호가 되어 버리고, 모두가 자기 중심으로 편리하고 편안하게, 내일이야 어찌 되든 오늘만 기분좋게 살아보자는 풍조가 되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정치를 하는 사람부터가 나라살림을 경제논리로만 밀고 나가려고 하니, 사람들은 다만 돈밖에 생각하는 것이 없는 괴상한 동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글쓰기도 권위와 겉모양 꾸미기로 되어 어려운 한자말, 외국말법 쓰기를 자랑삼게 되고, 아이들의 글쓰기가 논술문 시험 제도에 끌려가 삶을 떠난 빈 이론을 흉내내는 것으로 되고, 어른들의 문학이 천박한 말재주와 상업주의로 흐르고, 한문글자를 쓰자는 노망든 늙은이들이 아직도 돈과 권력을 잡고 세상을 그 옛날로 되돌리려고 설치고, 심지어 말로 빚는 예술이라는 문학 작품을 쓴다는 사람들조차 모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쓰자고 하는 주장을 뻔뻔스럽게 외치는… 이 난장판 세상에서, 정말 우리가 하려고 하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가 어느 정도 이 땅에 뿌리를 내려서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정도의 노력으로 우리 자신을 지키고 삶을 가꾸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러다가 우리도 몰래 커다란 세상의 흐름에 끌려가는 일은 되지 않을까? 썩어빠진 세상의 크나큰 흐름에 말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끊임없이 우리 자신, 나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채찍질하는 일을 얼마나 많은 회원들이 할 수 있을까?
  • 글쓰기 회원이 천 명에서 만 명, 몇만 명으로 불어나는 것보다, 참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열 사람만 있으면 우리 회는 언제까지나 살아서 이 땅의 등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둘째, 글쓰기회에서 공부할 자리가 세 가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아이들 글쓰기 교육을 연구하는 자리는 여전히 우리 글쓰기회의 중심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쓰기 교육에서, 우리가 내세우는 '삶을 가꾼다'는 목표와 방법이 이론으로는 온 나라 학교와 학교 밖 학원에서 널리 전파되어 있지만, 실제 지도에서는 우선 우리가 하고 있는 것부터도 10년 전이나 20년 전의 상태에서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는 것 아닌가 하고 반성이 됩니다. 정말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갔다고 볼 수 없어요. 그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서 그것을 찾아내어야 하겠고, 그래서 글쓰기 교육을 정말 제대로 해야 하겠습니다.
  • 그리고 지난날 한때 그토록 우리가 추악한 교육 관리들에게 시달리면서도 곳곳에서 그래도 아이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학급문집을 많이 만들어 내었는데, 정작 아무런 간섭이 없는 요즘은 학급문집을 내는 분들이 아주 드뭅니다.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이런 데서도 그 썩어빠진 세상 흐름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셋째, 어른들, 곧 회원들 스스로 쓰는 글인데, 글쓰기 회원이면서 한 해 동안 한 편도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지 않은지 의심스럽습니다. 아무튼 써 내어야 할 글을 한 번도 안 내는 분이 많으니까요. 아이들에게는 날마다 일기를 쓰라고 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어른은 일기를 안 쓰고 있다면 이것은 크게 잘못되었지요. 이래서는 교육이 될 수 없고, 삶을 가꾸자는 말도 빈말이 됩니다.
  • 넷째는 우리 말 살리기인데, 이 일을 좀더 잘해야 되겠습니다. 우선 우리가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밖에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입으로 하고 있는 말이 품위가 있고 살아 있는 우리 말인가, 깨끗하고 올바른 말인가, 어려운 말이나 유식한 외국말법으로 된 말이나 유행을 따르는 말이나 천박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문제들을 좀 살피고 공부해야 되겠어요. 말하기에 대한 공부를 조금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글쓰기에서는 우리 회보 <글쓰기>가 우리 나라에서 그 어떤 간행물보다도 우리 말을 바로 쓰고 깨끗한 말로 쓰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엉뚱한 외국말법, 잘못된 유행말이 가끔 나옵니다. 이렇게 잘못 쓴 글을 또 그때그때 살펴서 바로잡아 알리지도 않고 그대로 넘어가 버리니 답답합니다. 회보는 마땅히 우리가 공부해야 할 귀한 자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저 내어 보이는 책으로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 다섯째, 역시 글쓰기 회보 문제인데, 쓰는 사람이 대체로 고정되어 있고, 일반 회원들의 참여가 잘 안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글쓰기 지도의 이론이나 실천 기록, 보고가 너무 빈약하고, 아이들의 글도 빈약합니다. 지난 달의 회보에 실린 글을 읽고 느낀 점이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글도 좀더 많이 실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면이 모자라면 길게 쓰지 말고 짧게 써 내도록 하면 되겠지요.
  • 맨 앞머리에 싣는 동시 같은 것은, 벌써 책에 실려 많이 읽는 작품이나, 모두가 모르고 있는 작품이라 해도 별 신통치도 않는 시시한 작품을 싣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회원들이 새로 쓴 작품이나 아이들이 쓴 좋은 작품을 찾아내어 실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잘 눈에 띄는 자리니까요.
  • 여섯째, 어찌 생각하니 우리 글쓰기회를 그 이전으로 되돌려서 '글쓰기 교육 연구회'와 '우리 말 연구회'로 나누고, 또 여기에 따라 '어린이 문학 연구회'와 '생활글쓰기 연구회'도 만들고 해서, 이렇게 따로 살림을 차리고 공부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하면 '글쓰기 연합회'라고 해서 한 해에 한 차례씩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지요. 이런 길도 있으니 한 번 생각해 볼 만합니다.
  • 일곱째,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모임 안에서만 생각을 하고 의논을 해 왔습니다. 우리 모임 밖에서 일어나는 일, 교육 행정이 아이들과 글쓰기 교육을 잘못되게 하는 문제, 교과서 문제, 논술문 쓰기 문제, 백일장이나 글짓기 대회 행사 문제, 문인들의 글 문제, 아이들이 읽는 동시와 동화, 소설의 문제, 학원 교육 문제, 정부의 한자 함께 쓰기 정책 문제, 영어 공용화론… 이런 문제들에는 거의 논의조차 못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래서는 우리가 하는 일이 잘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많은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임을 앞에서 말한 것처럼 몇 갈래 전문 분야로 나누어 따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생각해 봅니다.
  • 여덟째, 우리 모임의 뿌리요 밑둥이라고 할 수 있는 글쓰기 교육 분야에서 우리는 아직도 가장 기본이 되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을 합니다. 글쓰기 지도안 하나도 버젓하게 써 내는 분이 별로 없어요. 글쓰기 지도 계통안(학년별·월별) 하나도 만들어 내는 분이 없으니 참 부끄럽습니다. 또 지금 아주 시급한 문제가 글쓰기 교과서를 만드는 일인데, 이것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할수록 우리가 너무 안이하게 '삶을 가꾸는 글쓰기'란 구호만 팔고 있다고 생각되고, 그래서 차라리 전문 분야로 모임을 나누어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