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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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5-04-17 03:46
    2014년 8월 연수를 다녀와서(이지혜 선생님)
     글쓴이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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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박 3일, 짧고도 강렬한 그날의 기억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하다. 아직도 ‘어떻게 이런 연수가 다 있지?’ ‘내가 어떻게 이런 연수에 오게 되었지?’ 하면서 신기해하고 놀라워하고, 선생님들의 위엄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던 내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선생님들의 눈빛으로 가득 찬 뜨거운 공간. 실제로 냉방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조금 더웠던 것은 사실이나, 더위도 잊게 만든 것은 선생님들의 뜨거운 눈빛, 진중함, 겸손함, 따스함, 그리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연수 내내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이오덕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이다. 자리를 크게 빛내시던 선생님들은 이오덕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배우신 분들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주영 선생님의 발표를 듣고 서야, 글쓰기회가 이오덕 선생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이어가는 뿌리 깊은 곳이라는 걸 자세히 알게 되었다.
    서정오 선생님의 발표를 듣고 방향 없이 쫓기만 하는 삶을 되돌아보았고 게으름이 주는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탁동철 선생님의 사례발표를 듣고는 아이들과 재미나게 살아가며 시를 쓰는 선생님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여태까지 글쓰기 회보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는데, 틈틈이 연수 회보를 보면서 선생님들이 쓰신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걸 느꼈고,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하시는 선생님들이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했다.
    오후에 모둠별로 모여서 토론을 할 때에는 선생님들과 함께 동학사로 가는 산길을 거닐었는데, 윤태규 선생님은 길가에 있는 나무들 이름도 하나하나 알려 주시고 옆에 계신 선생님들과 오순도순 나누는 대화도 즐거웠다. 그리고 계곡물 옆에서 먹는 파전과 막걸리, 도토리묵은 꿀맛이었다.
    이호철 선생님과 윤태규 선생님의 퇴임 축하 잔치는 내가 여태까지 봐왔던 공연 중에 단연 최고였다. 선생님들이 함께 만드는 무대, 사랑과 존경이 넘쳐나는 곳. 거기에다 재미까지. 마이크만 잡으면 노래가 나오고, 노래가 없어도 춤이 나오고, 무대가 허름해도 분위기는 끝내주는 공연이었다. 모든 것이 마음으로 준비했기에 가능했다. 이런 잔치가 또 있을까?
    나중에 벽에 붙어있던 현수막도 선생님들이 손수 만드신 걸 알고는 또 한 번 놀랐다. 내가 퇴임하는 것도 아닌데, 얼마나 많이 감동받았는지 모른다.
    이런 분들이 계셔서 아직 학교가 망하지 않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희망을 만드는 세상의 소금과도 같은 분들이 계셔서 내가 교사라는 직분으로 학교에 나갈 수 있고 아이들을 마주하는 거라 생각했다.
    이번 연수를 통해 나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너무도 무지했음을 알았다. 글쓰기 회보에 나오는 아이들의 시와 일기를 보면서, ‘쉽고 솔직한 글이구나, 나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종이와 시간만 주면 아이들이 글을 쓰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얼마나 거만하고 무식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사례발표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글쓰기 지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 구나’ 하는 것이었다. 회보에 있는 아이들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시를 참 잘 쓴다.’고 생각했고 ‘이 아이는 시를 어떻게 썼을까?’ 궁금했는데, 아이를 지도한 선생님의 사례발표를 듣고는 단번에 ‘아!’ 하고 이해되었다.
    그런데 그게 뭘까? 그 ‘아!’가 뭘까. 계속 궁금하고 놀라웠다. 궁금하고 놀랍고 감동받고. 감동받은 막막함도 크고. 그래서 뭐부터 해야 할까? 뭘 읽어야 할까? 하다가 그냥 이 분들 발끝만 따라가도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연수 다녀오고 나서 글쓰기를 놓지 말아야지 생각이 더욱 굳건해 졌다.
    아이들과의 관계가 힘들 때, 관리자와 행정실이 싫을 때, 내 자신이 미워질 때, 글쓰기를 하면서 털어놔야지. 흔들리는 내 자신을 글쓰기로 붙잡아야지. 닫힌 삶을 글쓰기로 열어야지.
    그러고는 이번 학기부터 교실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들과 주고받은 대화를 자세하게 적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작정 글로 남기려는 욕심이, 예를 들어 아이들과 대화하는 그 순간에도 ‘이거 기억했다가 이따가 꼭 글로 남겨야지’ 하는 생각이, 진짜 대화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내 기억력이 나이에 비해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냥 그날 하루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이야기와 생각을 짧게 적고 있다.
    오늘 아침에 아이들과 밖에 나가서 쓴 시를 부끄러운 맘 가득하지만 용기 내어 옮겨본다. 갑자기 시를 써 보고 싶은 생각이 든 이유는, 이 날 아침 날씨가 분명 쌀쌀한데 햇살은 여름날처럼 따사롭고 이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연필과 공책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 구석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로 갔다. 느티나무 아래 나무 의자에 앉으려고 하는데, 이미 잠자리 한 마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반 아이는 장우와 은지 둘뿐이다.
    장우가 조심스레 다가가 잠자리 날개를 살며시 잡았다. 장우는 잠자리도 잘 잡고, 개구리도 잘 잡고, 곤충을 참 잘 잡는 아이이다. 잠자리는 눈이 수백 개라는 둥 저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나는 이때다 싶었다. 시를 쓸 수 있는 순간.
    글쓰기 모임에서 배운 대로. 하지만 기억은 잘 안 나므로 내 방식대로 각색해서,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얘들아, 잠자리가 뭐라고 하니?”

    제목없음 / 이장우․고산초등학교 2학년
    매미가 맴맴
    맴 맴

    하지만 장우는 매미에 대한 시를 썼다. 잠자리는 금방 놓아 주고 말이다. 장우는 나뭇가지 사이로 푸드덕 날아가는 까치도 보고, 저 멀리 논 위를 나는 청둥오리도 보다가 매미 소리를 들었나 보다.
    장우는 이 시를 쓰기 전에 나에게 ‘맴’자를 어떻게 쓰냐고 물어보았다. 장우가 쓴 시를 보고 ‘풉’ 하고 웃음이 났다.
    장우는 가장 쉬운 글자로 짧고 단순하게 시를 쓰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너무 잘 썼다. 어쩜 저리도 자기와 딱 어울리는 시를 썼는지 말이다. 장우의 시는 자꾸 머릿속에 맴 맴 맴돈다.

    쨍쨍 / 정은지․고산초등학교 2학년
    햇빛이 쨍쨍 바람이 살랑살랑
    내 마음이 살랑살랑 내 마음이 쨍쨍
    자연에 따라 내 마음이 움지겨.

    은지의 시는 장우와 다르다. 아이들 모습 그대로 시가 되나 보다. 장우는 6세 한글 공부하는 것도 어려워하는데 은지는 잘하려는 욕심도 많고 언제나 뚝딱이다.
    그런데도 서로 죽이 잘 맞는다. 공부하다가도 저들 끼리 마음이 통하면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얼마나 명랑하고 말 많고 시끄러운 아이들인지. 이 아이들은 내가 손에 잡았다 싶으면 도망가고 또 잡았다 싶으면 또 도망간다. 두 명밖에 안 되지만 아이들 맘 얻기는 어려운 일이다.
    2학기는 글쓰기를 하면서 아이들과의 삶을 꾸려 나가고 싶다. 아이들에게서 어떤 글이 나올까 무척 기대된다.
    하나 더 기분 좋은 일이 있는데, 우리 학교 동료 선생님을 글쓰기모임에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지난여름 1정 연수를 받은 젊고 예쁜 선생님이다. 이 선생님이 공부 모임을 찾길래, 내가 글쓰기 모임이 최고라고 얘기했더니, 언제부터 시작이냐고 해서 바로 삼겹살과 술이 함께하는 2학기 첫 모임에 데리고 왔다. 그날 새벽 1시까지 함께 있었다. 학교 회식은 저녁 9시 넘기기도 힘든데, 글쓰기 모임에서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게 된다. 그것도 깔깔깔 웃으면서 말이다.
    2학기에는 나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꾸준하게 쓰고 이를 선생님들과 함께 나눌 것이다. 어렵고 잘 안 되는 것은 여쭙고 배울 것이다. 한자어와 번역투가 남발하는 글 습관도 고치고,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더 많이 배워야겠다. 그리고 이오덕 선생님의 책도 꼭 읽어야지! 시작은 언제나 설렌다.
    글쓰기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이 길로 오게 한 모든 인연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