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5-04-17 03:42
2013년 8월 연수를 다녀와서(김제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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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태희
조회 : 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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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도 먼데 제 깜냥에 사례 발표를 했습니다. 제가 했던 것을 있는 그대로 풀어만 내자고 마음먹고 또 먹었는데, 발표를 하려고만 하면 뭔가 좀 더 그럴듯하게 꾸미려 듭니다. 잘했다 싶은 부분은 더 힘주어 얘기하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누구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심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발표를 하고 나면 내심 칭찬을 듣고 싶어 합니다. 이번 발표는 안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돌아보니 그 마음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인정받으려고 하는 마음은 끊임없이 학교에서 나를 괴롭힙니다. 끊임없이 나를 이야기 중심에 서게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을 뒤로 물러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제 자신을 또한 받아들입니다. 인정하고 가만히 바라보면 점점 좋아지겠지 하며 격려도 합니다.
예전부터 수업 잘하는 선생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혼자서 많은 연수를 찾아다녔습니다. 그 마음에는 물론 더 나은 수업을 하고 싶다는 좋은 마음도 있었지만, 연수를 받고 와서는 그 수업을 해서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아이들이 저더러 수업 잘한다고 하면 마음속으로 우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저보다 더 인기가 있다고 하면 질투하고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글쓰기 공부를 하다 보니 그런 제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버릇이 왜 생겼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더 좋은 선생이 되려면 그 버릇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법을 배워 와서 현장에서 써 먹을 수 있는 연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글쓰기 연수는 그러한 눈에 확 들어오는 방법이 처음에는 저에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실 다른 연수보다는 좀 앉아서 듣기가 힘든 연수였습니다. 연수 내용보다는 좋은 사람들과 만나는 즐거움이 더 컸죠. 그냥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제 마음이 치유되었습니다. 연수 내용보다 그게 저에게 더 중요했습니다. 때로는 그런 사람들과 제가 너무나 다른 것 같아 자괴감이 들어서 오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글쓰기 선생님들은 뭔가 타고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을 닮아가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젠 다른 연수보다 글쓰기 연수에 가장 먼저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글쓰기 연수에 빠지지 않아야 하는지 좀 알 것 같습니다. 내가 가장 닮고 싶어 하는 모습이 결국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글쓰기를 할 때 아이들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합니다.
잘한 것만 추려서 사례 발표를 하려했던 저와 달리, 이호철 선생님께서는 힘든 상황을 먼저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잘 하고 있는 부분을 힘주어 말하지 않았습니다. 글쓰기 누리집 회보 메뉴에서 검색창에 이호철 선생님 이름을 치면 1990년부터 쓰신 글이 나옵니다. 23년 동안 글쓰기회에서 공부한 어른입니다. 그런 분이 자신을 낮추고 학교생활 하며 힘든 점을 이야기하고 잘 안 되고 있는 것들을 솔직하게 말씀 하십니다. 그 자체가 제게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 마음이 아이들과 글쓰기를 20년 넘게 꾸준히 할 수 있었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호철 선생님께서 소처럼 묵묵히 걸어가자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이 제 가슴에 무겁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오덕 선생님께서 살아 계실 때 뵌 적이 없어 그 당시는 모르지만, 저에겐 정년을 불과 1년 앞두고도 아이들과 글을 쓰는 이야기를 풀어주신 분은 이호철 선생님 말고는 아직 못 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은 ‘존경스럽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이 되지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닮고 싶어졌습니다. 이호철 선생님처럼 회보에 20년 넘게 꾸준히 150편도 넘는 글을 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나이가 예순이 되어서도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뵌 적도 없는 이오덕 선생님께서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흐뭇해하실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성장 지향, 소비 지향 문명이 마치 끓는 물에서 개구리가 죽어가듯 서서히 사람들을 죽여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물질의 풍요를 만끽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결핍과 빈곤, 언젠가 다가올 재앙을 애써 외면하면서요. 그것만큼 무서운 것은 지금 문명이 끊임없이 자신을 내세우고 포장하고 드러내야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내가 남들보다 더 튀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통 경쟁력이라고 합니다. 저도 언제부턴가 거기에 찌들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례 발표를 할 때 잘한 것만 포장하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건 둘레를 먼저 살피고, 나보다 아이가 먼저여야 하고, 소박한 것을 더 소중히 하는 우리 글쓰기회 정신과 맞지 않습니다. 자기를 자꾸 낮추게 만드는 글쓰기 공부는 지금 시대에 불편한 공부입니다.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 경쟁력 없는 농촌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농촌은 우리 글쓰기회 선생님들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 때문에 글쓰기회 회원 수도 아주 옛날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일까요? 이런 시대 환경이 이호철 선생님도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발표가 더 소중했습니다. 한 번 더 저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대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묵묵히, 소처럼 이 길을 가는 것 밖에 없겠죠. 자신 있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큰 욕심 없이. 하지만 어쩌면 그 욕심이 가장 큰 욕심인지 모르겠습니다.
처가에 와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초저녁에 둘레 산책을 하다 밤하늘을 날고 있는 반딧불이 한 마리를 봤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죠.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단지 한 마리였는데도 말이죠. 글쓰기회의 옛날이 많은 반딧불이가 아름답게 날아다니는 밤하늘이었다면 지금은 몇 마리만 날아다니는 밤하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밤하늘을 수놓기엔 수가 너무 적죠. 하지만 그 모습도 무척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런 반딧불이 중 한 마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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