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5-04-17 03:41
2013년 8월 연수를 다녀와서(김영호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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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태희
조회 : 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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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연수에 처음 가 본다. 다섯 살 아들, 우영이와 함께 갔다. 연수 전에 어린이 놀이방을 신청해 두었는데 연수 하루 전날, 아내는 우영이를 데려가지 말라고 했다. 첫 연수이고, 밤에 가려움증이 있는 아이인데 감당하겠느냐는 걱정이다. 여태 여름, 겨울 연수에 오지 못했던 것도 이리 저리 따졌던 걱정 때문인데, 이번에는 아니다 싶었다. 우영이에게도 공부가 될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어려움도 따랐다. 글을 한 편 써야 했고, 많이 부족하니 공부 더 해서 다음에 갈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외국어를 쓰지 말아야지. 글쓰기 지도에 대해서 연수에 오신 선생님 모두가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나만 모자란 것은 아닐까?’
아파트 내부 공사할 것도 있고, 고향에서 더 머무르고 싶은 생각도 들고, 뭐 말해 보자면 끝이 없겠지. 하지만 마음은 단단했다. 무언가 끌림이 있었다.
4시까지인데, 3시 10분쯤 도착했다. 차를 세우자 비가 쏟아졌다. 그치기를 잠시 기다리다가 늦을까 걱정이 되어 우영이는 안고, 책가방 두 개는 메고 들고, 우산을 쓰고 연수하는 곳으로 들어섰다. 입구에는 여러 선생님들이 계셨다.
“김영호 선생님이세요?” 하고 누가 물었다.
‘나를 어떻게 알지? 회보 편집 일을 하시는 분인가? 낯선 이가 연수에 참가하니 나를 아나?’ 싶었다.
또 지나가시던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선생님이 쓰신 글 읽었어요. 글만 볼 때는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인 줄 알았어요.” 한다.
또 어떤 분은 “선생님 글이 우리 지역에서 인기 있었어요.” 한다.
나를 알아봐 주니 기분이 좋고, 굳어 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선생님이 김영호 선생님이구나. 안녕하세요. 제가 선생님 글 편집했 어요. 뒷부분은 잘랐는데 괜찮으세요?”
글쓰기 선생님들은 글로써 서로를 만나고 있었다. 나도 인사 나누었던 선생님들이 쓰신 글을 자료집에서 찾아 얼른 읽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키가 크시고, 보송 까끌한 흰 수염 선생님이 손 내미시며 인사를 청한다.
“화랑초등학교요? 내 알아요. 정진해 교장선생님 계실 적에 학교에 한번 갔지요. 이름표가 없네.”
주중식 선생님이셨다. ≪갈래별 글쓰기≫책을 꺼내 차례를 보니, 삶을 가꾸는 글쓰기 주제를 쓰신 분이다. 긴 얼굴, 흰 머리에 흰 수염. 눈동자가 꼭 우리 친할아버지 같다. 이름표를 받으려고 서성거리는데, 이호철 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오셨다.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더 말을 잇지는 못했다. ≪살아 있는 교실≫ 흑백 사진으로 뵙던 것보다 얼굴에 주름살이 적었다. 대학생 때 처음 읽었으니 10년은 더 지났는데, 그때 사진보다 젊어 보이셨다. 선생님을 뵌 것만으로 가슴이 뛰었다. 첫 강의를 맡으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가가서 살갑게 인사 나누지 못했다. 부담되실까 봐. 첫 강의는 이호철 선생님의 주제 발표였다. 슬리퍼에 반바지, 흰머리 할아버지 이호철 선생님은 딱 내가 그리던 모습이었다. 강의 중에
“내 얘기는 재미없어요. 책에 다 있어요. 애들 글 하나 읽고 가지요.” 하신다. 강의를 하실 때보다 아이들 글을 읽어 주실 때 눈이 더 밝고 맑아지는 좋은 선생님이다. 이호철 선생님과 같은 학교에서 일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정작 선생님께서는 학교에 글쓰기 정신을 퍼뜨리기 쉽지 않다고 하신다. 이호철 선생님은 강의 중에 한 번씩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기 어려운 환경이나 학부모의 못된 짓에 험상궂게 한탄하고, 이내 따뜻한 할아버지 얼굴로 돌아와 아이들 글을 읽어 준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그렇게 걸어오셨다고 한다. 나도 학교 탓하지 말아야겠다. 내 정신이 문제이지 내 둘레가 문제가 아닌 것인데.
저녁밥을 먹고, 이무완 선생님이 사례 발표를 하셨다. 구자행 선생님이 소개하시는데, 아이들 시를 엮은 책 제목이 아주 인상 깊다. ≪샬그락 샬그란 샬샬≫ 한 번에 외우지는 못하겠다. 구자행 선생님도 샬그란? 샬그락? 여러 번 말꼬리를 올리며 틀리기도 했다. 입속으로 샬샬거리며 연수를 들었다. 시 지도는 아주 어렵다. 나는 시를 볼 줄도, 쓸 줄도 몰라서 어렵다. 이런 나를 위로라도 하듯 이무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학급 문화 꾸리기가 연필 잡기 전에 할 일이지요.”
“말길이 트여야 마음이 트입니다.”
방법은 그 다음이다. 결정적 장면을 잡아 자세하게 쓰게 하는, 마음으로 사진 찍듯이 나만의 장면을 또렷하게 드러나게 쓰는 것은 그 다음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일단 아이들 마음에 가까워져야 한다.
첫 날, 입구에서 반갑게 맞아주셨던 박선미 선생님이 둘째 날 사례 발표를 하셨다. 발표 전에 ‘방구 끼러 가는 길’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 박선미 선생님이 참 좋다. 1학년 아이들, 운동장 조회 줄을 세워 두고, 방구가 나오려고 했다. 저기 가서 뀌고 와야지 하며 한참 걷고 있는데, 뒤에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1학년 애들이 두 줄로 졸졸 따라오고 있다.
“왜 따라오는데?” 하니,
“선생님 어디 가는데요?” 하더란다.
참 인간적이지 않나. 정말 따뜻한 분이다.
박정용 선생님 사례 발표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었다. 2007년 12월 전역해서 이듬해 3월에 5학년을 맡아 5월에 제주도 수학여행을 갔다. 저녁에 반성회를 하는데,
“부장님, 애들이 제 통제를 너무 안 따라요.” 하니,
부장님이 ‘통제’가 아니라 ‘안내’겠지 하신다. 아직 군인 티를 벗지 못한 끓는 피로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도 많았으니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박정용 선생님 반 아이들은 그나마 낫다. 선생님은 지역 글쓰기회에서 건강한 모임을 하며 고민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여름 연수 때문에 방학이 기다려지지 않더라는 선생님, 일기 쓰기 발표를 위해 지난 회보의 사례를 모두 찾아보았다는 박정용 선생님, 비슷한 나이라서 반가웠고 건강한 그 마음을 배우고 싶었다.
자료집에서 내 글을 편집하셨던 김제식 선생님은 종합고등학교 아이들이 선생님을 욕하면
“그래 실컷 내 욕해라. 고맙다.” 하시며 그 글을 보기글로 읽어 주신단다.
사무친 마음을 내뱉으며 글로 쓴 아이들의 글에는 절로 고개 숙여진다. 여러 번 등장했던 ‘영대’ 학생. 우리 반에도 작은 영대들이 있을 텐데…. 나는 그 아이들 마음에 들어가 보았나 싶고, 담임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글이 나오게 가르칠 수 있을까? 대단하다는 마음만 든다.
“글쓰기 연수는 다른 연수와 다르다.
1.글을 한 편씩 써 와야 한다.
2.글쓰기 연수는 강사를 모셔 한 방향의 강의를 하지 않는다. 서로 가르치며 배우는 연수다.”
연수 시작하면서 구자행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나도 글쓰기 연수는 다른 연수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많은 다른 연수는 내용과 사례를 잘 꾸며서 전달한다.
“이렇게 좋은 사례가 있어요. 한번 따라 해 보세요. 얼마나 좋아요.” 하면, ‘혹시 빈틈은 없을까? 저거 어디서 본 내용인데.’ 하고 의심하게 된다. 글쓰기 연수에서는
“나는 잘 못해요. 모자랍니다. 이런 점은 고쳐야겠어요.” 하면
‘왜 말을 다 안 해 주지? 숨은 비결이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2013년 여름 글쓰기 연수에는
사례 발표하고 내려오는 젊은 선생님을 안아 주는 따뜻한 품이 있었고,
목욕탕에 갔더니 애들이 수술 자국 보고 ‘라’자 같다더라 하시며 연수장에 서 있는 강인함이 있었고,
당장이라도 때려치워야지 하면서도 미운 세상을 걱정하며 한평생 뚜벅뚜벅 걷는 우직함이 있었다.
선생님 글에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 글에 그들의 삶이 있었고,
그 사는 이야기에 흘리는 선생의 눈물이 있었다.
하지만
쉽게 감동하지 말고,
내 모든 것을 바꿀 것처럼 행동하지 말자.
여름 연수에서 이 한마디를 새긴다.
“소처럼 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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