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5-04-17 03:37
2013년 1월 연수를 다녀와서(이정호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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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태희
조회 : 3,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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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들이 뭐라고 해도 꺾지 않을 똥고집 같은 신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배가 아프면 숯가루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에서 일이 일어났을 때라도 손에 잡을 수 있도록 숯가루를 촘촘히 배치해두고 있습니다. 집에는 물론이고 학교, 자동차 서랍, 여행 가방, 심지어 밀양 집에도 있습니다.
물론 음식을 많이 먹어서 체했을 때는 숯가루를 먹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사이다나 소화제를 먹고 숯가루는 설사가 나거나 까닭 없이 배가 아플 때 주로 먹습니다. 말하자면 세균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의심이 들면 숯가루가 즉효약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이런 믿음 뒤에는 당연히 숯가루가 좋았던 경험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릴 적에 배앓이를 할 때면 할머니가 아궁이 솥에서 시커먼 그을음을 긁어내어 먹이곤 하였는데 그걸 먹고 나았던 경험이라든지, 산 중턱에 마을 상수도 물 저장소를 만들 때 세균 죽인다며 어른들이 볏짚 태운 재를 넣어주던 모습도 믿음을 더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숯가루를 신봉하게 된 건 8년 전쯤에 아주 신기한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거의 여섯 달 이상 배앓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배가 아프고 심지어 물만 먹어도 아팠는데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을 아무리 써도 낫지 않았습니다. 설악산 1박 2일 산행을 하루 앞둔 어느 날, 배 상태로 봐서는 도저히 산에 갈 수 없겠다 싶어서 산행대장님한테 전화를 하려고 했죠. 하지만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선생님들끼리 꾸린 등산모임에서 처음으로 계획했던 장거리 산행이라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의 딱한 사정을 들은 어떤 사람이 매실액을 먹으면 배앓이를 멈춘다고 해서 급히 사서 마셨지만 오히려 더 아프기만 했습니다. 마음은 이미 포기하는 쪽으로 기울었지요. 산에 가고 못 가고는 문제가 아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배가 아픈가 이렇게 생각하며 시내를 걷다가 매실액을 샀던 유기농 상점에 가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제 말을 유심히 듣던 가게 아주머니는 그럼, 이게 좋겠다며 ‘차콜’이라는 먹는 숯가루를 내놓았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마음으로 3만 원을 주고 한 통 사와서 물 한 잔에 숯가루 한 숟가락을 넣어서 먹물처럼 만든 뒤 꿀떡 마셨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반 년 넘게 아팠던 배가 어떻게 쉽게 낫겠노. 속으로 이러며 누워있는데 한 십 분쯤 지났을까, 문득 배 안이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으로 눌러보아도 통증이 없고, 물을 마셔 보아도 이전처럼 아프지 않았습니다. 어, 이거 신기하네? 하면서 오렌지 주스를 마셔도 안 아파서 밥을 된장에 비벼 몇 숟가락 먹었는데 역시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고통을 주던 배앓이가 멈춘 것입니다. 배앓이를 멈추게 한 것이 바로 숯가루였고요.
이때부터 저의 마음 깊은 곳에는 배앓이에는 숯가루가 즉효약이라는 믿음이 자리잡게 되었지요. 물론 설악산에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다녀왔고 지금까지도 그런 배앓이는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연수 후기 쓰려고 앉았는데 이야기가 딴 데로 한참 새어버렸네요. 어쨌든 이 정도 경험이면 신념이 생길 만하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글쓰기도 숯가루 못지않게 저에게는 하나의 신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글쓰기는 어떤 영험한 경험을 주어서 신념이 되었는지 또 밝혀야겠지요.
짐작컨대 글쓰기회 회원들이라면 누구나 글쓰기나 글쓰기교육을 신념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 연수 자료집을 보면 젊은 시절 어두운 지하세계에서 편지와 일기를 쓰며 자신을 지탱했던 주순영 선생님 글이 나오는데, 아마 이 분은 글쓰기를 신념보다 더 높은 차원, 그러니까 종교처럼 우러러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맞지요?
저는 햇살 잘 드는 양지에서 쭉 살아왔고, 어릴 때는 글 보다는 그림을 더 좋아해서 글쓰기와는 상관없는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 때 신문 독자란에 투고하는 용기를 냈다든지, 여자 친구들이 부탁하는 대회용 독후감이나 글을 대신 써 준다든지 해서 제법 글 솜씨가 있다는 말은 몇 번 듣기는 했습니다. 일기도 가끔은 쓰고 있어서 전혀 글과 상관없는 인생은 아니었던 셈이지요. 물론 그 때 쓴 글들은 저의 삶에서 나온 말보다는 지식이나 사상, 이념 같은 발효되지 않은 언어들이 많아서 저의 글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 때 학교 체육관에서 다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자연히 글 쓰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특히 졸업하고 발령 난 뒤에 다리 상태가 안 좋아져서 병가 내고 드러눕게 되자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은 편지나 일기 같은 글쓰기 밖에 없었습니다. 양지에 살다가 지하세계로 들어왔다고 할까요? 머리에서 나온 글이든 몸에서 나온 글이든 어쨌든 글을 쓰면서 고통도 잊고 스스로 치유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글쓰기회보를 만나게 되었는데 읽을 때마다 마음을 잔잔하게 해 주고 얼른 일어나서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일깨워 주었지요. 아, 글쓰기가 이래서 좋구나 하는 믿음이 이때 생겨났고, 저에게도 주 선생님 못지않은 삶의 지침이 되었지요.
‘숯가루를 챙겨놓듯 방학 때마다 글쓰기연수회를 챙겨놓고 다른 일정은 짜는 건 바로 이런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연수회에 가게 되었습니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과정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하여튼 이런 까닭으로 글쓰기, 글쓰기교육, 문집 만들기는 오랫동안 저의 관심 분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연수회에 올 때마다 저는 저에게서 2%, 아니 그 이상 어딘가 부족한 점을 느꼈습니다. 교사로서 글을 쓰고, 글쓰기를 지도하고, 문집 만들기를 하고 있으나 과연 내가 진정한 글쓰기 회원인가?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무엇이 나를 이토록 부족하게 만드는가. 어린 시절 너무 양지에서만 살아온 탓인가? 지하세계에 발을 담궈야 하나? 해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연수회에 가면 늘 해결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는 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이번 연수회에도 이런 기대를 하고 왔지요.
여러 선생님들의 주제발표, 사례발표를 듣고 모둠토의를 마치고 연수회가 끝나갈 무렵 문득 이런 한 줄기의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저에 대한 분석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일을 만나면 감정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 늘 머리로 분석하고 이성이 시키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러다 보니 둘레 사람들, 아이들과 세세한 부분까지 감정을 나누지 못한다. 글쓰기, 문집 만들기는 단순히 내가 잘 하는 분야의 일일 뿐(마치 글 솜씨가 있는 것처럼), 내 삶 속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나는 즐기는 일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관계는 쉽고 편하게, 얕지는 않지만 깊지도 않다. 어떤 영역이든 가볍게, 깔끔하게 처리하려고 한다. 글쓰기도 내 삶 바깥의 어떤 영역, 삶과 별도의 어떤 영역에서 처리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게 주어진 과제는 삶과 생각, 말이 일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글쓰기를 삶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이런 날이 오면 글쓰기 교사로서 나는 에너지가 폭발할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 놓고도 쓴 소감문을 보니 역시 감성 보다는 이성으로 판단하고 분석하는 글을 써 놓았더군요. 연수 마치는 날 종이에 써 놓고 급하게 전화기 메모장에 옮겼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연수에 오기 전에 ‘이야기교육’이라는 주제에 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교육인가 아니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그것을 글쓰기로 이어지도록 하는 교육인가 헷갈렸습니다. 어쩌면 이 둘은 전혀 다른 내용인데 한 군데 버무려서 연수가 제대로 이루어질까 의문스럽기도 했지요. 왜냐하면 이야기 들려주기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수업 목적을 이루거나 수업 진행을 위해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아이들 이야기 듣기와 글쓰기는 특정 수업보다는 학급운영의 방편으로 삶을 가꾸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수업 교수님 말씀을 들어보니 이야기가 곧 삶이며 세상이고, 이야기 들려주기 모두 사람을 주인으로 바로 세우는 교육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정오 선생님이 하셨던 이야기 들려주기, 구자행 선생님이 하신 아이들 이야기 듣기, 탁동철 선생님이 하신 판 벌리기 모두 아이들의 이야기 곧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까요? 그동안 ‘교육’이라는 큰 틀에서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교실’, ‘수업’이라는 작은 틀에 얽매였던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연수였습니다.
아마, 다음 연수회에도 똑같은 고민을 안고 갈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영영 스스로는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신념처럼 연수회를 챙기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별 것이 없습니다.
이번 연수는 직무연수여서 새로운 사람들이 연수를 함께 했는데, 조금의 긴장감은 있었지만 그런 긴장감이 더욱 연수를 깊이 느끼고 받아들이게 했던 것 같습니다.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가 인기 있는 까닭은 쉽고 편안하게 가는 게 아니라 적절한 긴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던데, 어떤 드라마나 영화, 동화나 소설도 그렇고 이런 연수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연수회에 가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주중식 이사장님을 비롯해 이기주 선생님, 윤태규 선생님, 박문희 선생님, 서정오 선생님, 이호철 선생님을 뵙는 것도 큰 기쁨이었고, 놀이를 진행해준 세 분 선생님들, 연수회장을 뜨겁게 달구어 주었던 부산의 자갈치아지매들도 연수회를 빛낸 인물들입니다. 이번에 함께 올라가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신 윤종관 선생님도 저에게는 연수회와 함께 기억해야 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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