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5-04-17 03:32
2012년 1월 연수를 다녀와서(이길화 선생님)
|
|
글쓴이 :
김태희
조회 : 3,641
|
전북글쓰기 식구들과 함께 상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하늘을 보니 별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빛나서 별만 보고 가도 좋겠구나 싶었어요. 공부를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온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저는 기대를 안고 오지 않았어요. 자료집도 꼼꼼히 읽지 않았구요. 솔직히 말하면 방학이 되고 난 후에 아이들, 교실에 대해서 생각의 끈을 놓아 버린 것 같아요.
2학기 들어 동학년 선생님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얘가 분명히 문제가 있고, 저도 그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도 하루하루가 잘 가요. 벌써 일 년이 다 가고 있어요.”
담임이 처음이니까 라고 넘길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이면 담임을 몇 년을 해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 답답했어요. 그렇게 근근이 시간을 보내다 방학을 맞았고 아이들과 나에 대한 실망, 무력감에서 해방되기라도 하듯 학교를 잊고 지냈어요. 선생님들의 교실 이야기를 들으니 일부러 구석으로 밀쳐 두었던 우리 반 아이들과 학교가 조금씩 떠올랐습니다.
김숙미 선생님 사례 발표를 들으면서 제가 근무하는 학교와 같이 아파트촌에 있는 학교인데 아이들과 틈만 나면 나가서 자연을 살피고 글쓰기를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핑계만 대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아이들의 글이 얼마나 예쁜지 읽기만 해도 눈물이 나더라구요.
주순영 선생님의 모둠일기는 정말 제목대로 그 안에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숙미 선생님이 서로 잘 알게 되면 저절로 사랑하게 되고, 마음과 조그마한 감동을 함께 나누다 보면 한 식구가 되어 간다고 쓰셨는데, 모둠일기로 아이들과 교사, 또 아이들의 가족까지 모두 한 식구를 만들어 버린 주순영 선생님의 ‘깊은 포스’가 부러웠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4교시 짧은 일과 중에 바쁘게 모둠일기에 답글을 쓰는 선생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아이들 일기에 한두 줄 대꾸하는 일도 2학기 들어 게을리 했는데, 학부모님이 보는 일기면 부담도 컸을 텐데, 대단하세요.
이정호 선생님과 이채린 선생님의 주제 발표는 지난 공부방에서 일부를 조금씩 들었지만, 다시 들어도 웃음이 지어지는 사랑스러운 교실 이야기였습니다. 이 선생님들처럼 매일 교실 일기를 쓸 수 있을까?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일이라 바로 고개를 젓습니다.
‘교실 생활을 글로 쓰려면 늘 눈과 귀를 열고 관찰해야지, 말 한마디라도 더 주고받으며 함께 어울려야지,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지, 무슨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반성해야지, 아이들이나 부모님들 앞에서 겸손해야지 이보다 더 좋은 연수가 어디 있겠어.’ 이정호 선생님이 쓰신 대로 교실 일기라는 좋은 연수 때문에 두 선생님의 교실이 행복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특히 이정호 선생님은 20대에 입원실에서 썼던 일기 몇 토막을 읽어 주셨는데, 남의 일기를 듣는 게 원래 재밌기도 하고, 또 선생님이 가진 내공의 원천을 확인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사전같이 두꺼운 교실 이야기를 몇 권이나 가져온 이정호 선생님이 ‘무엇을 꾸준히 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라고 자료집에 적으셨더라구요. 힘들지 않아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세우기 위해 한다는 의지가 느껴져 더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윤일호 선생님은 장승초등학교의 교육 과정과 한 해 동안의 이야기를 풀어 주셨어요. 다른 이야기보다 학예회에서 아이들이 선생님들의 걱정과 달리 연습 한 번 없이 잘 해냈다며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 게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들을 믿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서도 제가 아이들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부끄럽지만 사실이니까요. 사람을 믿으면서 아이들을 믿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지요. 아이들도 사람이고, 어찌 보면 아이들은 환경과 시간에 변형되지 않은 원래 모습에 가까운 진짜 사람인지도 모르니까요.
지난 몇 달간 ‘원래 사람은 이런가?’ 하고 자문한 적이 많았어요. 작은 아이가 더 작은 아이를 괴롭힐 때, 힘 센 아이가 깡패처럼 날뛸 때, 목소리 큰 아이의 잘못 앞에서 모두가 침묵할 때, 혼자 소리 지르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에요. 저도 작고 힘없는 아이들을 나무랄 때는 벌컥 목소리가 커지더라구요. 그런데 어떻게 사람을 믿고 아이들을 믿나요. 나조차도 믿을 수가 없는데 말이지요.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역별로 선생님들이 소개를 하는데 많은 선생님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감동은 교실에서 글쓰기를 아이들과 함께 실천하면서 서로를 보듬고 사는 선생님, 그리고 그 삶의 아름다움과 노력에 대한 것이겠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들 얼굴이 환하고 행복해 보이는데 그게 신기하게 보였어요. 혼자 외따로 떨어져서 선생님들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자료집에 밑줄을 긋고 감탄도 하고, 나도 이런 걸 좀 따라해 볼까 다짐도 해 봤지만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았어요. 마음이 닫혀 있었던 것 같아요. ‘나도 감동하고 싶다. 내 마음은 왜 열려 있지 않을까?’ ‘마음은 동하는 거지 일부러 만들 수는 없는 거잖아?’ 바람, 자책, 반항이 뒤섞인 마음으로 하루가 지나고 그렇게 연수가 끝날 줄 알았어요. 제 문제를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줄 수는 없을 테니까요.
정유철, 김숙미, 강삼영, 장미영, 박순희, 이광우 선생님과 모둠활동을 했어요. 제가 제일 어리고 경력도 없으니 마음이 편했어요. 듣기만 해도 좋을 거야. 말을 안 해도 되겠지 싶어서요. 사례 발표며 학교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고민이 내 한계라 느껴졌던 부분과 겹쳐지고, 또 그것을 다른 선생님들이 다 경험했던 일이라고 공감해 주시니 입이 근질근질해져요. 주절주절 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정말 믿을 만한가요?’라는 바보 같지만 저에겐 절실했던 질문도 하고, 그러다가 ‘올해는 엄격하게 해 볼 거예요.’라는 대책 없는 다짐도 꺼냈어요.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이 엄격하게 하고 싶다고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강삼영 선생님이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어요. 덧붙여 “우리는 그렇게 못 해.” 하고 말씀하시는데, 웃음이 나왔어요. 저 ‘우리’라는 말에 내가 들어가는 거라면 나도 여기 있는 선생님처럼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이 조금 밝아졌어요.
김숙미 선생님이 고학년을 맡았을 때 이야기를 하면서 ‘그 때 내가 그 아이의 말을 더 들어주고 이해해 줬어야 했다’고 말씀하실 때는 내가 너무 쉽게 아이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고 그보다 더 쉽게 실망했구나 싶었어요. 아이들을 믿고 아이들의 마음을 듣는 게 맞는 거라면, 더 해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분명히 힘든 일일 텐데, 마음은 가벼워졌어요.
김숙미 선생님 말대로 아이들은 약한 것을 돌보고 자기 것을 주고 싶어 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졌다고 믿지는 않아요. 그런 믿음은 교실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함께 공부하면서 만들어 나가야 진짜가 될 테니까 아직은 말할 수 없어요. 제 약한 마음이 언제 또 흔들려서 문을 닫아 버릴지 몰라요. 사람을 믿고 아이들을 믿는 힘이 이번 연수를 받아서 생겨났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글쓰기 선생님들의 그 확신에 찬 대답들이 문을 완전히 닫고 싶지 않아서 길게 빼놓은 끈 하나를 잡아당겨 준 느낌이 들어요. 웃으면서 학교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연수 후기인데 제 투정만 부렸지요? 아직 저에게는 다른 선생님들처럼 넓은 시야로 두루두루 살필 여력이 없나 봐요. 제 문제는 혼자서 끙끙 앓아야 될 줄 알고, 손 놓고 있었는데 선생님들이 들어주고 격려해 주시니 기운이 나요. 저는 부족하지만, 여기 좀 붙어 있어야겠어요. 좋은 선생님들 옆에 있으면 저도 조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