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5-04-17 03:25
2011년 1월 연수를 다녀와서(김경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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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태희
조회 : 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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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수를 다녀와서 글을 쓰지 않고 있으니 마음이 안 편하다. 그래서 일기장을 펴들고 앉았다. 박선미, 구자행, 김제식, 나 이렇게 부산에서는 네 명이 차 한 대로 올라갔다. 경북 상주 환경농업학교로 찾아갔다. 날이 춥다. 주순영 사무총장과 최영숙 선생님이 밖에 나와 맞아준다. 추운 강당에 주순영 선생님 딸 여래가 접수를 받고 있다. “어머나! 춥겠다.” “괜찮아요.” 씩씩한 대답.
황토방이 있다길래 짐 풀러 가보니 방바닥이 절절 끓는다. 몸이 사르르 녹는다. 나중에 소개할 때 들어보니 최영숙 선생님이 불 때느라 애 많이 썼다. 아이고 고마워라!
이호철 선생님이 ‘글쓰기 지도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주제발표를 하신다. 아이들에게 문장쓰기를 따로 가르치는데 아이들마다 학원 안 가는 날을 뽑아 하루에 대여섯 명을 남겨 꾸준히 가르친다고 하신다. 엄마들이 처음에는 이상한 것 가르친다고 하다가 나중에 그 학교에 소문이 나니 “그 선생 담임 되면 고마 학원 한두 개 쭈라뿐다.” 하면서 괜찮더라고 하셔 다들 하하하 웃었다.
‘자세히 쓰기’에 대하여 오해가 있다고 하시며, 꼭 필요한 곳에, 남이 읽었을 때 궁금한 점이 있지 않도록 자세히 쓰는 것이 좋겠다고 하신다. 글의 길이만 길게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도록 생생하게 표현하자는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할 말 다 나타나게 쓰는 것이 필요하다 하신다. 또 이런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글은 되거나 말거나 써 보아야 합니다. 무조건 써야 합니다. 상상화 그릴 때 시작 못 하는 아이들에게 연습장 꺼내서 무조건 낙서해 보라고 하면 나중에는 그립니다. 자세히 보고 그리기를 먼저 하고 나중에는 상상화 그리기도 해 보게 하니 아이들이 곧잘 그립디다. 잘 안 된다고 하는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부터 잘 할라 하믄 도둑놈이지.’ 끄적거리기 시작하면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호철 선생님 같은 분은 행사 글짓기 따위는 그냥 가비얍게 무시해버릴 줄 알았는데 ‘행사 지시를 극복하는 글쓰기 지도’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고 위로가 되었다. 마지막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시험을 치는 것이 안 좋다 생각하면서도 대다수 선생님들이 꾸역꾸역 따라갑니다. 시험을 치더라도 삶을 가꾸는 일들을 하면서 학급을 꾸려야 합니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세상을 옳게 바꿀 것이 아닌가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뿌린 씨앗이 작은 희망이지만 여기에 목숨 걸고 가르칠 일입니다.”
그리고 이오덕 선생님이 김동건 아나운서와 이야기 나누는 대담프로 영상을 보았다. 이오덕 선생님의 모습을 뵈니 참 마음이 뭉클하고 그립다.
“글쓰기 교육이 왜 인성 교육인가요?”
“시험 점수 따는 교육, 남이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답지 못한 교육이 되어 버렸어요. 생활을 떠난 교육이지요. 책만 갖고 읽고 공부하게 해요. 생활 속에서 사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가르쳐야지요. 행동 속에서 배워야 해요. 삶을 키워가고 가꾸는 교육이 목표가 되어야 해요. 한 편의 글을 머리로 재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참된 삶을 가꾸는 과정에서 글을 쓰는 것입니다.”
“글을 보면 인성을 알 수 있나요?”
“글은 그 사람 자체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글이 곧 사람이니까 사람이 올바르게 되어야 좋은 글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르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먼저지요.”
이오덕 선생님이 아이들이 어른들의 동시투를 흉내 내는 글을 짓게 하지 말고 아이들이 아이의 목소리로 자기 삶을 써야 한다는 말씀을 이어서 하시자 김동건 아나운서가 대뜸 이런 질문을 했다.
“어른은 그러면 아이들이 읽을 동화나 동시를 쓰면 안 된다는 건가요?”
그러니 이오덕 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신다.
“왜 그래요? 그 말이 아니지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읽힐 좋은 동화를 물론 써야지요. 아이들은 아이 나름의 표현을 해야지 어른들을 흉내 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 생활을 쓰도록 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연수 때 가끔 뵙던 그리운 그 표정 다시 뵈니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책에서 읽은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들으니 참 좋았다.
“신념이 없었으면 이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부모들이 입신출세나 힘, 권력을 목표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속에서 착한 아이, 바르게 살아가는 아이를 키우려는 것이 시대를 역행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옳은 교육입니다. 믿음을 갖고 교육하면 언젠가는 이 사회가 바로 잡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린이날을 맞이해서 한 말씀 해주시지요?”
“너무 아이들이 따돌림 받고 있어요. 어른들이 모두 정치, 경제, 사회 할 것 없이 큰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잘못 길러지고 있는가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지요. 점수 따기 교육 시켜서 서로 점수를 빼앗는 교육 시키고 있습니다. 아이들 잡는 거지요. 어린이날이라고 좋은 음식 먹이고 그날만 좋은 구경 시키고 다음날 되면 ‘어린이날 지나갔다. 공부해라’ 또 이럽니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바르게 키울 것인가? 고민하는 날이 어린이날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문제를 밑뿌리부터 생각해야 하는 날입니다.”
바로 우리 앞에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느껴진다.
‘선생님의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영상을 보고 난 뒤 서로 소개하는 시간이다. 어머니가 지난 6월 쓰러지셔서 병구완하랴 연수 준비하랴 김광견 선생님이 정말 애쓰셨구나 싶었다. 사무총장 맡아 일하는 주순영 선생님도 얼굴이 핼쑥하다. 연수 자료집 엮으면서 숙제하라고 전화 직접 하고 문자 보내고 글 모으느라 참 고생했겠구나 싶다.
첫날은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이사들은 따로 모여 늦게까지 이야기 나누는 듯했다. 다들 일찍 자라 했지만 방마다 이야기꽃이 시들지 않아 느지막이 누웠다.
연수 둘째 날. 임성무 선생님이 아침을 열었다.
“세상을 바꾸는 일, 큰일 한다고 다니는 동안 내 밑바닥이 허물어지고 있었습니다. 도법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셔요. ‘세상의 평화를 원하면 네가 먼저 평화롭게 살아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지요. ‘고통 받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투쟁하라 하지 않고 평화롭게 하라고 하는 겁니까?’ 그때 스님 말씀이 ‘그래서 너는 행복하냐? 힘들고 아파도 행복한가?’였습니다.”
누구보다도 뜨겁게 살아오신 선생님 삶을 한 시간 이야기로 다 풀 수는 없었겠지만 이 말씀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모든 게 때가 있다. 다 지나가리라. 겁내지 말자. 내만 십자가를 지었다고 우울해하지 말자. 다 지나간다.’
아침을 먹는다. 농약 치지 않고 키운 무시래기국과 나물 반찬들이 어찌나 맛있던지 한 그릇이 금세 뚝딱이다. 참 고맙게 잘 먹었다.
박선미 선생님의 주제발표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를 들었다. 내 삶이 흐트러지고 망가질 때 내 모습을 가다듬게 해 준 거울과도 같은 것이 글쓰기였다고 하며 그동안 스스로가 자랑쟁이였던 것 같아서 입 다물고 묵묵히 사는 일부터 해야 하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고 겸손한 말씀을 한다.
아이들이 하루하루 만나는 것들에 마음을 주면서 서로 삶을 나누면서, 자기 삶을 돌아보고 동무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아이들로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훌륭하게 자라나는구나 생각했다고 하신다. 둘레에도 관심과 눈길을 주면서도 조금 더 넓은 세계로 서로의 손이 되고 발이 되어 더불어 사는 아이들에게 감동했다고 하셨다.
얼마 전 연평도 사건 계기 수업을 하라는 교육청 지시에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평화로 가닥 잡아 해야겠다 싶어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를 함께 읽었다고 하신다. 함께 읽고 마음이 아팠던 곳, 마음이 오래 머물렀던 곳을 말해 보라 하니 아이들이 자연스레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말들을 하더라고 한다. 만약 그냥 아이들에게 연평도 사건에 대해 생각 말해 보라 했더라면 바로 북한에 폭탄 퍼붓자 이런 말들이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하신다.
“소외되고 약한 이웃들에게 눈길 줄 수 있는 아이들, 함께 아파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평화에 한 걸음 다가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선미선생님 이야기 가운데 한 도막 옮겨 본다.
“1학년 아이들 마음속에는 천사가 녹아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서 받은 상처를 품어주지 못하고 위로 받지 못하니 마음속에 날이 서 있다가 터져 나오게 되더라고예. 내 마음을 다스리고 여유 있게 아이들 앞에 설 때는 아이들이 천사 같고 다 품어지는데 내 마음이 힘들 때는 아이들도 힘들어지지요. 내가 나를 다스릴 때 아이들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선미 선생님과 늘 함께 공부하면서 살 수 있어서 내가 이게 무슨 복일꼬 싶다. 참 고맙다.
그 다음에 김순용 선생님이 ‘작은 학교에서 크는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이랑학교 아이들과 글쓰기 하며 사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글쓰기 정신으로 내 모든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몽골에서 일 년 보내고 시골에서 살겠다고 내려왔다고 하신다. 정말 대단한 결단이고 용기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 아이들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서 수업이 이루어지게 했다고 하신다. 아이들은 서서히 마음을 열고 서로 힘이 되는 아름다운 공부를 하게 되셨다니 참 부럽다.
“아이들과 화 내지 않고 즐겁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 기쁘게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참 좋습니다. 아이가 나중에 이런 말을 해요.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이 말에 감동했습니다. 한 해 동안 행복하게 살았듯이 이 행복한 기운을 온 세상에 전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이런 말로 말씀을 마무리했다.
듣고 있는 동안 절로 힘이 나고 덩달아 행복해진다. 맞다. 내 스스로 행복하게 살아야 둘레 사람들도 행복해지지. 볼 때마다 놀라운 김순용 선생님, 늘 곁에서 더 많이 배우고 싶다. 언제나 내 삶을 돌아보게 해 주신다.
또 즐겁게 점심밥을 먹고 모둠토론을 하였다. 뜨끈뜨끈 황토방에 둘러앉아 군고구마 먹으면서 행복하게 이야기 나누었다. 우리 모둠에 서정오 선생님이 계셨다. 서정오 선생님 말씀을 듣는 일은 참으로 즐겁다.
체벌 금지 인권조례 때문에 아이들이 선생님한테 덤비게 된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아이와 교사가 서로 마음이 통하고 존중하며 서로 배울 때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서정오 선생님은 우리 이야기 듣고만 계시고 계속 말을 아끼신다.
“선생님도 한말씀 해주세요.” 하면 짧게 생각을 말씀하신다.
“아이들은 정말 수수께끼더라구요. 애들이 말을 안 들을 때 제가 예전에 쓰던 수법이 있었습니다. 내가 스스로 벌을 섰지요. 의자 들고.”
“예에? 힘들잖아요.”
“물론 팔 아프지요. 이 방법은 극약 처방인데 1년에 한 번쯤 쓰면 효과가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선생님,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 막 빌어요. 그러면 나는 못이기는 척하면서 의자를 내리면서 ‘앞으로 잘할 거지’ 하면서 웃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약효가 안 받는 거라. 내가 의자를 번쩍 들고 아무리 서 있어도 아, 이놈들이 멀뚱멀뚱 보고만 있어요.”
“하하하. 어떡해요.”
“한참을 들고 서있으니 이거 참 난감하더구만요. 애들이 사과를 해야 슬며시 내릴 수 있는데. 그래서 할 수 없이 한참 그러고 있다가 내가 먼저 큰 소리로 ‘너희들 잘할거지!’ 하면서 팔을 내렸지요. 아, 이제 이것도 안 써야겠구나 마음먹었지요. 어쩌면 그 아이들이 더 정직하고 순수한지 모르지요. 옛날에 용서 빌던 그 아이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감화해서 그런 것이 아니지 않았나 싶어요. 체면을 봐서 감화되는 척했을지도 모르지요.”
웃는 얼굴로 어찌나 재미나게 말씀하시던지 한참 웃었다.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문제지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다, 교육 운동과 사회 운동이 맞물려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 나누었다. 우리 운동이 더 맹렬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도 했다. 세상이 참 힘들다, 아이들도 불쌍하고 선생들도 힘들다, 이야기가 아주 심각하게 흘러갔는데 마지막에 서정오 선생님 말씀 한마디에 모두 마음이 환해졌다.
“희망은 있습니다. 우리 옛날이야기에 다 나와 있지요.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던가요?”
“착한 사람들이 복을 받아요.”
“보세요. 거기에 다 답이 있잖아요.”
저녁 먹고 다시 강당에 다 모여 모둠 토론 발표를 들었다. 모둠마다 열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다들 얼굴이 달아올라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힘을 얻은 표정이다. 눈이 빛난다.
4모둠에 홍은영 선생님이 말하면서 이오덕 선생님 말씀을 인용했다.
“아이들 삶을 바로 세우려면 세상과 떨어질 수 없다.”
아이들 글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선생님들도 힘들다고 하는 상황이다. ‘패배는 경쟁 사회에서 곧 죽음’인 이런 상황 속에서 교육의 문제는 아이들만의 문제도 아니고 나 혼자 만의 문제도 아니다.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 환경의 문제다. 우리 스스로 바로 서고 치열하게 공부하는 것과 교육 운동과 사회 운동이 맞물려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공부와 싸움이 더 맹렬해질 수밖에 없다 싶다. 물론 그 공부와 싸움은 즐기면서 행복하게 할 일이다.
모둠토론 발표를 마치고 총회가 열렸다. 한 해 동안 사무총장을 맡아 애쓴 주순영 선생님이 새 사무총장으로 구자행 선생님을 추천했다. 이사회에서 지난 밤 의논되었다 하고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손뼉을 쳐 새 사무총장을 맞이했다. 그동안 주순영 선생님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생각하니 참 미안하다.
구자행 선생님은 우리 글쓰기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한 것들을 찬찬히 힘 있게 말했다. 우리는 열심히 들었다. 함께 마음을 모아야겠다.
뒤풀이는 식당에서 했다. 다들 이야기 나누는 데 몰두해 분위기가 뜨거웠다. 노래 없는 뒤풀이는 처음이라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그동안 이야기 나누어보지 못했던 박정기 선생님, 김형성 간사와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셋째 날 아침에는 ㅤㅆㅑㄴ티학교 교장인 오덕훈 선생님 말씀을 들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어찌나 힘주어 말씀하는지, 속으로 아이고나 싶었다. 글쓰기회가 신문 일면에 다른 한글 단체들과 함께 한자 교육 반대한다고 대문짝만하게 성명 낸 것 보고 화가 나서 이오덕 선생님한테 따지러 갔는데 못 만난 이야기도 하셨다.
“아니, 그렇게 한자 교육 반대하면 영어 교육은 왜 아무 말 안 하냐고 따져야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오덕 선생님과 맞짱 뜨러 갔는데 그 양반이 거기 안 오셨더라고.”
여기까지는 그냥 웃으면서 슬슬 들었다. 그러다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는데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아 들었다. 농사짓다 빚만 늘어 고생하다가 농민 운동을 하게 되고 반독재 투쟁을 하다가 19987년 6.10 항쟁을 맞이하게 되셨다고.
“그렇게 투쟁만 하고 반대만 하고 살다가 어느 날 회의가 들더라고. 시대는 바뀌었는데 투쟁은 그대로고, 조직은 굳어있어요. 반대 투쟁만 하고 살 것인가? 내 삶은 반대만 하고 사는 것이 옳나? 재미있고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건데. 역사적 사명 띠고 투쟁하더라도 떳떳하고 행복해야 고난 속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정부가 잘못 했다고 반대만 할 때는 나의 존재감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유기농업도 아주 우습게 생각하고 싫어했지요. 약 안 치고 좆빠지게 유기농 농사지어서 서울에 부자놈들 우리 압제하는 놈들 처먹고 오래 살아라고 그럴끼가? 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진짜 무농약 농사를 지어야겠다 마음먹었지요. 저농약을 친환경이라 하는 것 우습습니다. 농약을 쪼매 쳤습니다. 친환경입니다. 이거 웃기는 이야기지요.”
“유기농업은 자본주의에 대한 실천적 대항이고 운동입니다. 자본주의 이노무꺼 언제 망하나 욕을 백날 해봐야 안 망합디다. 신자유주의 그런 거까지 더 강력하게 왔지요. 너무 심하게 반대하는 말 하면 저놈 빨갱이다 할까봐 살살 말하겠습니다. 자본주의가 빨리 망하게 하려면 뭐를 안 사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것 때문에 자본주의가 사는 것입니다. 유기농업적 삶은 가난하게 사는 것입니다. 얼마나 가난하게 살 것인가는 내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유기농업이 농업의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처럼 되는 것, 자본주의의 샛길로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근본의 길을 항상 확인하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소학의 핵심이 ‘쇄소응대’입니다. 물 뿌리고 빗자루질하고 ‘아무 것이야’ 하면 ‘예’하고 대답하는 것. 이것부터 어릴 때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이 노동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지 몸으로 일하는 것은 저질이라 생각하게 자랍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나라도 미국처럼 되는 것입니다. 미국처럼 총 가지게 해 보세요. 총기 사건 더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이들이 일을 하지 않으니 머리만 크고 자꾸 편할라 하는 쪽으로만 발달합니다. 교육의 근본은 일을 하게 해야 합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삶의 기본적인 것은 자기 몸에 익혀야 합니다. 유기농업은 몸을 쓰는 것입니다.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샨티학교에서는 내 꿈을 설계해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낼 것이라고 하며 말씀을 마무리하셨다.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사시는 분이구나 싶었다. 또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연수가 마무리 되고 이제 마치는 시간이 되었다. 박정기 선생님이 연수 소감을 나와서 말씀하신다.
“늘 혼자 연수 오고 실천하며 독립군으로 십구 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아이들 글모음을 40권이나 엮어내고 사진도 찍어왔습니다. 앞으로는 내가 공부한 것들을 나누며 살아야겠다 마음먹습니다.”
다들 마음을 담아 손뼉을 쳤다. 주중식 선생님이 총평을 하신다.
“불 때고 밥 해 준 손길 고맙습니다. 먼 길을 달려와 준 모두들 고맙습니다. 앞에 나오면 다 떨립니다. 떠는 마음 또한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 이 자리는 서로 배우는 자리입니다. 풍경 소리에 이런 글을 읽었어요. ‘두려워 마라. 별 것 아니다.’ 여기서 별 것에 별은 따로 별입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다. 어떤 일도 그렇게 심각하게 여길 일도 아니다, 이런 말이지요. 전우익 선생님 병문안을 갔더니 이런 말씀을 하셔요. ‘인생이 뭐 별 거가?’ 너무 휘둘리지 말고 중심을 잡고 살아야겠습니다. 저 파헤쳐지는 강도 나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제발표 해 준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이번 연수에 제목을 붙여 본다면 저는 이런 제목을 붙여보겠습니다. 여기가 하늘나라”
나는 이번 겨울 연수에 이런 이름을 붙여보고 싶다. ‘새순은 돋는다’ 나를 돌아보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둘레 사람들과 사랑 나누며 행복한 학교 만드는 일 힘내서 하고 싶다.
겨울연수 내내 따뜻한 기운 흐르게 해 준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특히 연수 준비하며 애쓴 주순영 선생님과 김광견 선생님, 김형성 간사님, 맛있는 밥, 따뜻한 방 주신 환경농업학교 애쓰신 분들, 고맙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고향인 청송에서 농약 하나도 안 치고 기른 무시래기 샀다. 우리 집 한 보따리, 시댁 한 보따리, 두 보따리 사서 돌아가는 차에 싣는데, 김제식 선생님이 무시래기를 한 보따리 씩 또 선물로 준다. 아이고 고마워라! 한 해 내내 행복하게 먹을 수 있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도 푸짐하고 양손 가득 시래기도 푸짐하다. 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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