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지도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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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8-07-18 14:47
    글을 쓰니 자진신고를 하더라.
     글쓴이 : 정유철
    조회 : 5,586  
    글을 쓰니까 자진 신고를 하더라.

    강경섭, 2007년에 중학교 2학년 학생. 말이 너무 없다. 몸에 힘이 없고 흐느적거리며 걷는다. 아이들은 섭경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데 반에서 내놓은 왕따다.
    경섭이는 1학년 때 아이들한테 많이 맞았다. 학교에서 힘이 센 아이들이 괜히 기분 나쁘다고 때렸다. 담임 선생이 초임이고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잘 몰랐다. 아이들이 때리고는 잘 숨기기도 했다.
    2007년, 그 해 삼월에 처음 아이들 글을 보는데 좋은 글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보현이가 쓴 ‘경섭이’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경섭이는 원래부터 저런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1학년 때 경섭이랑 배드민턴도 치고 했는데 지금은 친하지 못하다. 앞으로 더 친해야겠다.

    그런 내용이었다. ‘보현이가 참 착하구나. 그러고 보니 성격도 밝네.’ 그러고 있었는데 가을 소풍을 가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보현이가 어떤 애 돈을 이십만원이나 뺏었고, 소풍을 가는데 돈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때리겠다고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보현이는 1학년 때부터 경섭이를 때려왔다. 학원에서 까닭 없이 경섭이를 때렸다.
     
    머리가 좋은 보현이는 글쓰기를 시작하자 자기가 잘못한 일이 알려질까 봐 미리 일을 꾸민 것이다. 경섭이한테 잘하고 경섭이를 생각하는 듯한 글을 쓴 것이다.


    태영이는 그 때 우리 반 아이였다. 용주면에서도 한참을 들어가면 산골에 마을이 있는데 거기 아주 작은 집이 태영이 집이었다. 페인트 칠도 하지 않은 두 칸 시멘트 집이었다. 기훈이 집에서 억지로 쥐어준 소풀을 들고 들어갔더니 태영이 어머니가 나와서 그걸 받는다. 받자마자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서 소풀을 다듬는다. 나는 태영이를 힐긋 봤다. 얼굴이 좀 붉어졌다. 그때서야 알았다. 태영이 어머니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지내고 밥하고 설거지만 한단다. 청소는 태영이 아버지가 한다. 나는 좀 안쓰러운 기분이 들어서 어머니 손을 잡았다. 눈이 주름살처럼 보였는데 그 눈으로 나를 보는 것 같더니 손을 쓰다듬는다. 곧 “에이” 하며 손을 뿌리친다. 아들도 남편도 아닌 낯선 사람인 것을 안 것이다.
    태영이는 백혈병에 걸려 고생했지만 다행히 방송을 타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한 학기에 한 번 대구에 있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는데 거의 나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알콜중독에 걸렸고 합천고려병원에서 놀며 지내도 생활비 정도는 보조금으로 나오니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끔 땀을 뻘뻘 흘리며 병원서 학교까지 와서 태영이를 부른다. 내가 휴게실로 데려가 커피를 한 잔 뽑아 주면 그렇게 황송해 할 수 없다. 내가 미안할 정도로.
    태영이는 아버지한테서 차비를 받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한테 돈을 맡기면 태영이에게 필요한 만큼 주겠다고 해도 듣지 않고 꼬박꼬박 학교를 찾아온다. 가끔 우유하고 빵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태영이도 1학년 때 무지하게 많이 맞았다. 태영이 짝이 다감이였는데 영어 시험을 쳐서 빵점을 받은 태영이를 엄청나게 때린 모양이다. 왜 때리냐 하면 영어 선생님이 태영이한테 영어를 가르치라고 했는데 시험을 그따구로 쳐서 때렸다는 것이다.
    그러던 다감이가 2학년에 올라와서는 태영이한테 앞으로는 안 때리겠다고 했다. 그 사실은 2학년이 끝나갈 무렵 알았다. 내가 한 솔직한 글쓰기는 다감이를 겁먹게 하기 충분했다.
    솔직하고 쉽게 쓰고 싶은 것을 쓰자고 하고 좋은 글을 읽어주고 신문으로 만들어 1학년 전체 학생한테 읽혔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이 아이들은 자기가 한 잘못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손에 자기 죄목이 드러나기 전에, 아니면 정말 자기를 돌아보며 마음이 움직여 반성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글쓰기를 하며 이것 참 잘됐다고 느낀 것 가운데 하나다.
    솔직해지기만 해도 해결되는 문제가 참 많다. (2008. 7. 18.)

    이주영 09-08-27 20:14
     
      8월 25일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보았는데, 막상 해보니 막연하게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더 떨리더군요. 하고 나니 정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눈물이 날뻔했어요. 문득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글을 쓰던 아이들 생각이 떠 올랐어요. 아이들이 털어놓고 솔직하게 글을 쓸 수있는 교사를 만난다는 건 참 좋은 일이고, 우리 글스쓰기 회원들이 그런 믿음받는 교사들이 되어야한다는 소망을 다시 한번 간절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