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06-26 01:08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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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의 참교육을 찾아서 7/이주영(서울 송파초) 이오덕은 평생 우리 겨레와 겨레의 어린이들이 참된 삶을 지키고 가꿀 수 있는 ‘참교육’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쓴 책 갈피갈피에 피어있는 참교육에 대한 생각을 찾아보고, 요즘 우리 겨레의 교육이 나갈 길을 짚어본다. 그 일곱 번째로 ‘거꾸로 사는 재미’(산처럼, 2005)’에서 ‘교사의 죄’에 대한 생각을 찾아보았다.
나는 일본 제국 말기에 교원 생활을 시작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내 천직이라고 깨달은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교단에 서보니 참 힘들고 괴로웠다. 일제의 살벌한 군대식 교육은 체질적으로 나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게 하였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다른 참교육을 조금이라도 실천할 만한 나대로의 교육관이나 교육이론이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자신을 잃고 위축된 나날을 괴로워하면서 지냈던 것이다. ∼1년 남짓한 그동안에 나는 우리 민족의 아이들을 일본 제국의 아이들로 훈련하는 일에 충실히 협력하였던 것이다. 해방이 되어 잠시 꿈같은 날을 보냈지만, 일제의 망령은 모든 학교 교육에서 조금씩 되살아났다. 아동 중심이니, 민주 교육이니 하는 것은 입으로만 지껄이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한층 악화시킨 것이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온갖 금품 징수 사무였다. 해방 직후 내가 근무하던 ㅂ시 어느 학교에서 달마다 아이들로부터 걷어낸 돈의 종류가 열 가지도 훨씬 더 넘었다고 기억된다. 그리고 돈 아닌 물건을 걷어 모으는 일이 또 그만큼 많았다. 이런 짓을 용납하며 감행해 온 사람이 교육자는 무슨 교육자란 말인가?
1970년대 들어서자 돈 걷는 일만은 천만다행히도 거의 없어졌지만, 이제 교육은 하나의 상품으로 되고 말았다. 빈 내용을 겉치레로 선전하기에 학교마다 경쟁이 되었고, 아이들은 서로 점수를 많이 따려고 하는 비참한 경쟁에서 인간답지 못한 삶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교육 행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하게 교육을 그 세부 실천에 이르기까지 간섭함으로써 학교 교육은 온전히 자주성을 상실하고 말았다.∼이런 역사에서 무사히 월급쟁이 노릇을 하여왔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죄를 짓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아이들을 꼭두각시로 훈련시킨 교관이었고, 돈을 징수하는 세금쟁이였다. 나는 아이들의 그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재질과 개성을 뻗쳐줄 줄 모르고 획일화의 몽둥이를 휘둘러 그들을 똑같은 형태로 두들겨 맞추어온 폭군이었다. 서로 남을 해치는 비참한 경쟁을 강요하는 깡패였다. 선거운동을 하였던 위선자였다.∼앞으로 나는 이 죄를 얼마쯤이라도 씻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할 것이다.(326쪽∼332쪽)
1982년 ‘길을 밝히는 사람들’이라는 책에 실을 원고를 써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이렇게 죄를 고백하는 글을 써 주셨다. 처음에는 기획 방향하고 달라 당황했는데, 읽어보니 죄를 고백하는 선생님 글이 다른 어떤 글보다 우리 후배 교사들이 가야 할 길을 훤하게 밝혀주는 글이었다. 이 글은 당시 우리 교사들이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고, 월급장이 사무원으로 전락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밝혀주셨고, 당시 20대였던 우리들 젊은 교사들이 함께 죄를 고백하면서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1980년대, 방학 때 교육청에서 만든 연수가 아니라 우리 교사들 손으로 만든 2박 3일 교사 연수에 모이면 밤마다 참 많이들 울었다. 언제였던가? 경기도 이천에서 왔다는 1년 밖에 안 된 새내기 여교사가 군학력 고사를 볼 때 아이들한테 부정 시험을 보도록 선배들이 시켰고, 채점까지도 틀린 답을 지우고 부정 채점을 했다며 서럽게 울었다. 그러자 함께 이야기하던 교사들이 하나 둘 따라 울었고, 결국 그 밤은 밤새 교사로서 지은 죄에 대한 고백과 술과 눈물로 지새웠다. 그런 고백과 눈물이 혹독한 겨울 공화국 80년대를 뚫고 나오는 힘이 되었다.
1990년대, 전교조에서 마련한 연수에 가면 노래를 불렀다. 밤새 ‘참교육의 함성’,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가’같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고, 그 노래따라 흐르는 눈물 속에서 참교육의 의지를 다졌다. 우리들에게 죄를 강요하는 무리들에 맞서 싸울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죽어가는 아이들이 횃불로 되살아오는 그날,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이 이 땅에 뿌리 내리는 그 날, 교육 3주체가 손잡고 함께 사람답게 살아갈 그날을 만들자고 서로서로 굳게 손잡고 다짐했다.
2000년 중반을 넘어서는 오늘, 우리 교육은 얼마나 참교육의 땅으로 일구어 졌는가? 우리 아이들에게 죄를 짓지 않은 교사로 살 수 있게 되었는가? 정말 우리 교사들이 무슨 죄를 어떻게 짓고 있는지, 밤새 눈물 흘리며 고백하는 자리가 필요 없는 시대가 된 것일까?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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