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06-26 01:06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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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의 참교육을 찾아서 5/이주영(서울 송파초) 이오덕은 평생 우리 겨레와 겨레의 어린이들이 참된 삶을 지키고 가꿀 수 있는 ‘참교육’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쓴 책 갈피갈피에 피어있는 참교육에 대한 생각을 찾아보고, 요즘 우리 겨레의 교육이 나갈 길을 짚어본다. 그 다섯 번째로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청년사, 1977)’에서 음악 교육에 대한 생각을 찾아보았다.
요즘 아이들은 노래가 없이 자라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특별히 음악 지도에 힘쓰고 있는 학교 선생님들 항의를 받을지 모르지만 전반적인 상황으로 봐서 하는 말이다. 아이들은 교과서 노래를 버리고, 대신 어른들의 유행가를 부르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나 깨나 어디를 가나 듣고 있어야 하는 유행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동요를 부르지 않는 것은 부를 노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시골에 갈수록 학교 음악 교육은 등한시되고 있다. 음악 시간을 충실히 보내지 못하는 교실도 적지 않지만, 아이들은 흔히 윗 학년에서 부르는 것을 듣고 대강의 흉내를 내는데, 그 부르는 것이 엉망이라 다시 고쳐 가르치기가 어렵게 된다. 음악 지도를 잘 한다 싶은 교사도 이렇게 제멋대로 부르는 버릇을 악보대로 고쳐 주기가 극히 어려워 그만 포기하는 수가 흔한데, 그럭저럭 음악 시간을 넘기는 교사가 어찌 이것을 바로 잡겠는가?
아이들보다 선생님들부터 동요를 부를 줄 모른다. 어쩌다가 술자리에서 흥이 나면 선생님들은 참 멋내어 유행가를 부른다. 그야말로 최신 유행가다. 그런데 동요는 모른다. -줄임- 선생님들이 이러니 아이들이 동요를 제대로 부를 리 없다.
교재에 나오는 동요라는 작품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곡이 부르기 좋은가 하면 가사가 옛날 것이거나 아동 생활에 맞지 않는다. 가사가 괜찮다 싶으면 곡이; 적당하지 못하다. 너무 음역이 높거나 리듬이 지나치게 느릿느릿하여 아이들이 애창하기에 부적당하다. 이것은 교과서 편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동문학과 음악의 빈궁 상태를 말해 주는 것이다. 대체로 곡보다 가사가 적당하지 못한 것이 많다.(13-14쪽)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자란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자리에는 언제나 노래가 있었다. 우리 겨레의 옛 아이들이 부르던 노래 가사를 보면 얼마나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그에 알맞은 노래를 부르면서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60년대를 돌아보면 지금은 전래동요집에서 찾아볼 수 있는 놀이 노래들을 부르면서 놀았던 일이 떠오른다. 잠자리를 잡으면서, 냇물에서 멱 감으면서, 버들강아지를 갖고 놀면서….
어린이들이 놀면서 스스로 만들어 부르던 노래와는 다른 동요가 나오기 시작한 때는 1920년대다.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 운동을 하면서 동요를 만들고, 그 동요를 널리 펴기 위해 힘썼다. 수 백 편을 만들어서 몰래몰래 학교 교실에서 가르치고, 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치고, 400여 소년단체에서 가르쳤다. 그렇게 해서 널리 퍼진 동요들이 ‘고향의 봄’ ‘반달’ ‘따오기’ 같은 노래들이다. 그리고 1950-1960년대 동요 운동이 일어나면서 ‘산토끼’ ‘옹달샘’ ‘파란 마음 하얀 마음’같은 동요들이 널리 퍼졌다.
1970년대, 아이들이 놀면서 신나게 부르는 노랫소리에 깜짝 놀랐다. ‘나의 살던 고향은 인천 교도소…’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어느새 아이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꽃피는 산골’이 아니라 ‘인천교도소’가 된 것이다. 하긴 도시 어린이들이 살아가는 삶이 교도소와 다를 게 없으니 당연하다 싶기도 했다. 학교도 감옥이고, 학원도 감옥이고, 집도 감옥과 다들 바가 없으니 아이들이 숨어서 부르는 노래에 감옥이 나오고, 줄줄이 강도가 나오는 것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점점 더 유행가에 젖어 살게 되는 아이들한테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주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많다. 민요조를 되살린 동요를 만들어 보급하는 사람들이 있고, 지금은 ‘철부지 할아버지’로 더 널리 알려진 고승하의 아름나라가 있고, ‘일하는 아이들’을 비롯한 아이들이 쓴 시에 곡을 붙이고 있는 백창우가 있고, 이런 동요 운동에 참여하는 2000년대 젊은 교사와 어머니들이 있다. 그러나 참으로 우리 시대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노래를 되찾고, 그 노래와 함께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즐겁게 놀 수 있는 시간, 노래하고 춤추며 마음껏 놀 수 있는 자리가 더 필요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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