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06-26 00:47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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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의 참교육을 찾아서 4/이주영(서울 송파초) 이오덕은 평생 우리 겨레와 겨레의 어린이들이 참된 삶을 지키고 가꿀 수 있는 ‘참교육’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책 갈피갈피에 남겨놓은 참교육에 대한 생각을 찾아보고, 요즘 우리 겨레의 교육이 나갈 길을 짚어본다. 그 네 번째로 ‘거꾸로 사는 재미(산처럼, 2005)’에서 우리 말 살려 쓰기 교육에 대한 생각을 찾아보았다.
최근 여행을 하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유쾌한 일을 하나 당했다. 다름 아니라 역에서 들려오는 아나운서 말에 “00방면으로 가실 손님은 타는 곳 1번에서 기다려 주시고, 00방면으로 가실 손님은 타은 곳 2번에서 기다려주십시오”하지 않는가! 뭔고 하니 종전에는 플랫폼의 일본식 약어인 ‘홈’이란 말을 그대로 써 오던 것을 이번에는 아주 우리 말 ‘타는 곳’으로 시원스레 고쳤으니 말이다.
학교에서 쓰는 말에 대해서 좀 얘기해 본다. ‘기립’ ‘착석’은 ‘일어섯’ ‘앉아’로 함이 얼마나 듣기 좋은가?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구령도 ‘집합’ ‘해산’보다 ‘모여’ ‘헤쳐’가 좋겠다. 해방 직후에는 ‘왼편으로 돌아’ ‘오늘편으로 돌아’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좌향 좌’ ‘우향 우’로 고쳐졌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가르쳐 본 사람이라면 ‘좌향’ ‘우향’이라는 말이 얼마나 어린이들에게 구별하기 어려운 말인가 하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얼음과자’로 고쳐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혼 여자를 부르는 호칭에 ‘미스 김’ ‘미스 리’하는 것은 아무리 우리 말 호칭이 빈약하다고 하더라도 너무 지각없이 나오는 말이다. 어쩌자고 제 동포끼리 이름조차 남의 나라말로 부른단 말인가? 이런 열등 민족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말은 그 민족의 피라 한다. 그 피가 풍부한 영양소를 받아들여 순수한 빛깔로 돌아가고 있으면 그 민족은 건강하게 자라는 증거요, 그와 반대로 온갖 불순한 요소로 흐려지고 정체되고 있으면 그 민족은 병 들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민족의 피에는 온갖 협잡물이 함부로 뒤섞이는 것 같다.(1965, 137-142쪽)
해방하고 나서 교육현장에서는 우리 말을 살려 쓰기 위해 많은 교사들이 힘썼다고 한다. 그런데 6.25를 거치면서 일본군 출신들이 장악한 군대에서 쓰던 일본식 한자말이 학교로 다시 흘러들어왔고, 1957부터 교육청에 의한 장학이 강화되면서 일제 시학 출신들이 장학사가 되면서 일제식 교육용어들이 학교 현장에서 되살아 난 것으로 보인다. 요즘 우리 교사들도 학교 다니며 배운 말을 교사가 되어서 그대로 쓰고 있는 형편이다. 또 학교 건물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글도 1,2학년 어린이들한테 어려운 말이 아직도 많다. ‘좌측통행’, ‘탑승금지’ ‘출입금지’같은 말을 1,2학년 어린이들한테 하나하나 설명해야 한다. ‘왼쪽으로 가셔요’, ‘타지말기’ ‘드나들지 않기’라고 쓰면 어린 아이들이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런 쉬운 말 대신에 굳이 어려운 말을 쓰는 까닭은 그런 말을 어린이 눈높이가 아니라 어른 눈높이에서 쓰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쓰는 말을 학교에서 가장 많은 어린이 눈높이에서 찾아 쓰는 것이 곧 교육민주화의 시작이고 끝이 아닐까? 요즘은 ‘미스리’나 ‘미스김’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그러나 영어 이름이나 일본식 이름이나 독특한 약자를 쓰는 연예인들이 갑자기 늘어나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미국이 주요 활동 무대인 연예인이라도 이왕이면 우리 이름을 살려 쓰면 좋겠는데, 우리 나라가 주요 활동 무대인 연예인들까지 그런다. 그런 예명으로 써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적은 현실이 안타깝다. 더구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영어 이름을 지어주고,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들 가운데서 교실에서도 영어 이름으로 부르고 대답하도록 가르치는 교사들이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말이 우리 말 어휘 수를 늘이고, 우리 말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 말에 없는 것, 우리 말로 바꾸면 그 뜻이나 맛이 제대로 살릴 수 없는 것은 다른 나라 말을 들여와 우리 말로 만드는 것을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 말과 꼭 같은 우리 말이 있거나, 쉬운 우리 말로 바꿀 수 있는데도 우리 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을 쓰는 것은 우리 말을 죽이는 지름길이다. 더구나 아이들한테 영어 이름을 즐겁게 쓰도록 가르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겨레의 교육이 가야할 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영어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도 잘 가르치는 교사가 진짜 실력있는 교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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