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12-26 15:08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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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삼인/2005 차례 하나 ․ 삶을 등진 교육 사람을 믿는다|재주꾼을 길러내는 교육은 안 된다|교육이 없다|삶을 등진 교육|우 리 아이들의 불행은 누구 책임인가|아이들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어린이 헌장 개정 안에 대한 생각 둘 ․ 아이들을 믿어야 하는 선생님 아이들에게 삶을 돌려주자|놀며 배우고 일하는 아이들|어린이를 살리는 교육의 길|아 이들을 믿어야 하는 선생님|교육자에게 계급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체벌이라는 도깨비 방망이|돈봉투, 이 못된 버릇|돈봉투와 촌지 셋 ․ 부모님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은 없다 부모님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은 없다|사람을 사람 되게|어머니들이 깨달아야 겨레가 살아날 수 있다|말과 일을 배울 수 있는 곳|쉬운 말로 천천히 넷 ․ 아이들을 죽이는 어른들의 나라 어른들의 이 엄청난 범죄|아이들의 병과 죽음, 누구 책임인가|아이들을 죽이는 어른들 의 나라|구원받는 길|버림받은 아이들|아이들을 잊어버린 어른들|‘나만’에 갇혀 있 는 사람들|불합격품 도장 찍히는 아이들 다섯 ․ 아이들한테 배우지 못하면 그래도 희망이 있었던 그 시절|아이들한테 배우지 못하면|오직 손쉽고 시원한 상식이 필요하다|스스로 폭발해 버리는 아이들을 생각한다|오염투성이 어린이 책|선생님들 이 읽어줬으면 하는 책|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아, 조혁래 군! 조 선생! 여섯 ․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 넝마주이를 생각한다|사람으로 살아가는 길|고향을 찾아가자|설마 내가 그렇게 되 겠는가|나뭇잎 청소|답답할 만큼 교육을 모르니|‘잘못했다’고 할 줄 아는 사람|권 정생 선생한테 배우는 것|계산할 줄 모르는 사람|삶을 등진 글쟁이들의 비극|사사 로운 생각과 크게 보는 생각|이렇게 노동자의 삶을 모른다|독재 정치에서 입은 해독 을 푸는 일 일곱 ․ 아이들 살리자는 운동이 없다 아이들 살리자는 운동이 없다|선생님은 민주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교육관을 바꿔야 합니다|착하고 바른 삶을 가르치는 것|서울 사정|민주교육 추진의 중추되기를|지난 5년 동안 교육운동을 돌아봅니다 맺는 글: 이오덕 선생님 일기 엮은이 말
버림받은 아이들 오늘은 무슨 일로 해서 옛날에 써 두었던 일기를 읽고 있는데, 1967년 7월 5일 일기에 한 아기가 죽은 얘기가 나와서 그때 일을 한참 동안 생각하게 되었다. ㄱ초등학교 교문 앞에 방을 빌려 자취할 때였는데, 울타리도 없는 그 마당가에 조그만 샘물이 있어 거기 놓아 둔 바가지로 누구든지 길 가는 사람은 물을 떠먹었다.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달려와서 물을 먹고, 나 또한 그 물을 쓰고 있었는데, 바로 그 옹달샘(지금 기억에도 옹달샘같이 느껴진다)같은 물에 이웃집 다섯 살 아이가 빠져 죽은 것이다. 그날 일기를 여기 그대로 옮겨 본다.
운동장 한쪽 버드나무 밑에서 ‘말 탄 놈도 꺼떡, 소 탄 놈도 꺼떡’노래를 가르치고 있는데, 5학년 아이들이 교문을 들락날락하더니 내 반 가까이 와서 “혜옥이(이 아이가 내 반에 있었다) 동생이 물에 빠져 죽었어.”한다. ‘뭘 그런 소릴 하나? 빠져 죽을 물이 어디 있어. 도랑에 빠져 옷을 좀 버린 게지.’ 이러고는 그냥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아이들이 자꾸 교문 앞에 나가 모이고, 어른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더니, 이 선생이 교무실에서 마구 달려간다. 그제야 무슨 일이 있어났나 보다 하고, 아이들에게는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앉아 있으라 엄명을 해 놓고 가 보니 혜옥이네 마당에 아이가 하나 누워 있고, 여러 사람이 둘러 있다. 죽었구나! 저게 죽은 혜숙이구나! 어째서, 어디에 빠졌단 말인가? 그 얕은 우물에 빠져 죽다니! 들어 보니 의사도 왔다가 손도 안 대고 가 버렸다니 아주 죽은 것이다. 입술이 고운 보랏빛으로 물들고, 손이 샛노랗다. 손목을 잡고 있는 사람은 맥박이 전혀 없단다. 달려온 이 선생도 안 되는 줄 알면서 인공호흡을 몇 번 시켜 보더니 일어나 가 버린다. 손을 잡으면 잡히는 대로, 몸을 돌리면 돌리는 대로. 이제 이 어린 몸에서 생명은 아주 떠나 버린 것이다. 우리가 늘 퍼 먹던 그 샘물의 깊이를 재어 본 사람이 1미터 50센티미터라 했다. 겨우 정강이쯤 올까 싶었는데, 그렇게 깊었구나! 그런 줄 알았더라면 진작 뚜껑을 해 덮었을 것인데. 아이들을 집에 보내 놓고 다시 혜옥이네 집에 가 보니 혜숙이는 그 뜨거운 마당에 종이로 덮여 있고, 어머니는 방에서 통곡이다. 아버지는 마루 한쪽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 물을 엎드려 퍼 먹으려다가 그만 미끄러져 거꾸로 빠진 모양인데, 쉬는 시간이면 수십 명의 아이들이 언제나 물 먹으러 달려오는 그곳에, 하필이면 아무도 오지 않은 시간 중에, 그것도 수업이 막 시작된 직후에 그리 되었을까? 또 왜 하필이면 그때 그 길가를 몇십 분 동안이나 사람 하나가 지나가지 않았을까? 운명이라 하니까 죽은 아이의 어머니는 세상에 운명이 어디 있어요, 부모 잘못으로 아이를 죽였지, 하고 더 큰 소리로 통곡을 한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쌀 씻는 부엌 앞 도랑에서 걸레를 빤다고 물을 후적거리고 있던 혜숙이, 내가 대야의 물을 머리에다 뿌리며 같이 장난치던 그 아이, 어제도 냇가에 갔다가 과자같이 생긴 조약돌을 주워 와서 “과자 먹어라, 아나!” 하고 손에 쥐어 주었던 그 아이, 지금이라도 곧 웃으며 저쪽에서 달려올 것 같은 그 아이가 이제는 영영 헤아릴 수 없이 먼 곳으로 가 버린 것이다. 나도 자꾸 눈물이 나와 혜옥이네 집을 나와 버렸다. 종일 혜숙이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지난달에는 내가 사는 이 아파트 방 바로 아래층에 사는 다섯 살 먹은(꼭 20년 전의 혜숙이 만한) 아이가 청소차에 치어 죽었다. 날마다 나가고 들어올 때 1층 문간 가까이에서 놀고 있던 그 아이가 죽은 것을 나는 보름도 더 지나서 알았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그 부모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있다. 부모들이 일하러 나간 다음 아파트 마당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과 끝없는 가능성밖에는 가진 것이 없는 아이들, 연두빛으로 터 오르며 햇빛을 펴다보고 있는 봄날의 새싹 그대로인 아이들이 어른들의 미련과 게으름으로 그만 그 귀한 목숨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어른들의 눈길 밖에 밀려나 버림받은 아이들이 우리 둘레에는 너무너무 많다. 또 아이들에게 눈길을 두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살아가는 부모들은 얼마나 많은가? 아이들을 떠받들지 않아도 좋다. 아이들을 노래로 헌장비로 팔지 않아도 좋다. 제발 아이들을 죽이지는 말자! (p.158~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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