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12-26 14:26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한길사/2003
|
|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896
|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한길사/2003 차례 생전의 이오덕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 권정생
살구꽃 봉오리를 보고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신문값은 나중에 내고 양식부터 마련하세요 저는 아직 서울에 못 가 봤습니다 인세가 나오면 약을 사 먹겠습니다 삼동의 밤하늘 별이 그립습니다 소쩍새 소리 들으며 인생과 문학을 생각합니다 염소 때문에 좀처럼 집을 못 나갑니다 내년 봄엔 어쩔 셈인지 가을에 개나리가 피었습니다 하늘 나라에는 일만 송이 꽃이 제각각 피어나지요 아동문학도 온 생애를 바쳐 쓰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선생님의 동화는 어른과 아이의 교과서입니다 토끼 달순이를 시집 보냈습니다 한 줄을 쓰더라도 정직하게 써야겠지요 할미꽃으로 비녀를 만들어 꽂은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위안과 용기를 주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 주중식
생전의 이오덕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오늘 아침 7시 조금 넘어서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정웁니다. 그만 끊겠습니다.” 딱 이 두 마디 말만 하고 전화는 끊겼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맏아들이자 상준이네 아버지였습니다. 전화가 끊기고 나서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을…. 순간 먼 산길로 선생님이 걸어가시는 뒷모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한 쪽 손에 두툼하게 싼 책보자기를 들고 한 쪽 어깨엔 느슨하게 끈 달린 가방을 메고, 선생님은 그렇게 산길 모퉁이를 걸어 사라지셨습니다. 우리는 선생님 안 계시는 데서는 ‘고집불통 선생님’ ‘독불장군 선생님’ 이렇게 흉도 보고 짜증도 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그게 아닙니다. 김 선생 말도 맞고, 박 선생 말도 맞다고 봅니다.” 그렇게 딴소리를 드리면 금방 꾸지람이 날아왔습니다. “야단났습니다. 권 선생조차 그런 생각을 하다니 실망스럽습니다.” 선생님 앞에서는 도무지 “아니요”라는 말은 절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열아홉에 교직에 들어가신 후 평생을 고집 하나만으로 꼿꼿하게 살아오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 모습은 이제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게 되었고, 목소리도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만 환청으로 들을 수 밖에 없겠습니다. 선생님 가신 곳은 어떤 곳인지, 거기서도 산길을 걷고 냇물 돌다리를 건너고, 포플러 나무가 서 있는 먼지 나는 신작로 실을 걸어 걸어 씩씩하게 살아 주셨으면 합니다. 『일하는 아이들』에 나오는 그런 개구쟁이들과 함께 별빛이 반짝이는 하늘 밑 시골집 마당에 둘러앉아 옥수수 까먹으며 얘기 나누시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합니다. 아직 이승에 남아 있는 우리들은 선생님이 남기신 골치 아픈 책들을 알뜰히 살피며 눈물나는 세상 힘겹게 견디며 견디며 살 것입니다. 사이 좋다가도 토라지기도 하면서요. 『우리글 바로 쓰기』『우리 문장 쓰기』는 국어 공부하는 사람이면 어쩔 수 없이 누구나 책꽂이에 꽂아두고 봐야 할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선생님, 이 담에 우리도 때가 되면 차례차례 선생님이 걸어가신 그 산길 모퉁이로 돌아가서 거기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부디 더 큰 눈을 부릅뜨셔서 이승에 남아 있는 우리들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살아 생전처럼 호되게 꾸지람하시고요.
선생님의 영전에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진달래꽃 한 다발 마음으로 바칩니다.
단기 4336년 8월 25일 오후 5시 권정생 드립니다
그날 그날을 충실히 살아가는 데서 즐거움을 가지시길
권 선생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자주 못 가서 죄송합니다. 그저께 바삐 서울 다녀왔습니다. 윤일숙씨 만나서 선생님 동화집 인세 십만 원 받아와서 어떻게 부칠까 하다가 오는 길에 정호경 신부한테 주었습니다. 정 신부님이 그곳 더러 간다고 해서 그랬는데, 또 한편 정 신부님이 선생님 요양비 걱정을 하시고 있어서 인세를 그분에게 드린 것이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머지않아 선생님 찾아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오에 대한 얘기가 이렇습니다. 애당초 윤일숙 씨가 제오에서 책을 내기로 한 것은 그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금성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이라 미더워서 그랬답니다. 그랬던 것이 차츰 사람이 변해가서 이젠 아주 믿지 못할 사람으로 되었다나요. 선생님 동화집 초판을 합니다. 윤씨는 자기가 그런 일을 할 수 없으니 누가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알아보고 처리하겠다 대답하고, 인지에 찍기 위해 새긴 도장도 받아 놓았습니다. 아무튼 선생님은 너무 염려마시고, 일이 대강 이렇다는 것만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멀리 있는 사람들한테 책방을 좀 조사해봐 달라 부탁해야겠어요. 그 동화책을 아직 저는 보지도 못했어요. 권 선생님께 드릴 것은 제오에서 직접 부친다고 하더랍니다. 이윤자 씨가 이 일을 윤씨와 한께 걱정했었는데 그 이씨가 중병으로 입원했다가 얼마 전에 퇴원을 했지만, 아직 완쾌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며칠 전부터 치통에서 몸살이 조금 나서 그럭저럭 쉬고 있는데, 서울도 좀 무리를 해서 다녀왔습니다. 오늘 낮 차로 안동 병원에 갔다가 정 신부님도 만나려고 합니다. 전우익 형이 어제 와서 같이 나가기로 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교구청 차로 정 신부와 함께 울진으로 가기로 했지요. 현주 목사도 오랜만에 만날 것입니다. 기회 봐서 한번 가겠습니다. 그날 그날을 충실히 살아가시는 데서 즐거움을 가지시도록 빌면서 몇 자 난필로 적었습니다. 1979년 5월 23일 이오덕 (p.181~p.18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