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12-08 19:57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1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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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살려쓰기|하나/아리랑나라/2004 차례 머리말 차례 하나|사람을 살리는 글쓰기 왜 글을 써야 합니까 (글쓰기에 앞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 쓰고 싶어서 쓰는 글 좋은 글은 어떤 글인가 이야기글부터 쉬운 말로 써야 ‘참말’로 쓰는 글 ‘생활글’과 ‘수필글’ 삶을 가꾸는 글쓰기 삶이 있는 글과 삶이 없는 글 몸으로 쓴 글과 머리로 쓴 글 그때그때 본 것, 한 것 쓰기 보고들은 이야기 쓰기 살아온 이야기 쓰기
둘|깨끗한 글쓰기 왜 공부를 하면 한 만큼 더 오염된 말을 쓰나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괴상한 한자말 어린아이들의 말에서 배우는 글쓰기 ‘왕따’와 ‘집단 따돌림’ 우리 말의 두 갈래 교과서의 말 받아쓰기와 글쓰기 받아쓰기 시키는 신문과 책들 세 가지 원칙|높임말 문제․사람을 가리키는 말․ 좌담-주고받는 말 적기․대화지방말(사투리)적기
셋|우리 말 이야기 ‘비상’,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군무’ 잘못 쓰는 농사 말 겹말을 쓰는 까닭 누가 우리 말을 더럽히는가? 한자말과 일본말 ‘밀서리’와 ‘밀사리’ ‘둔치’가 아니라 ‘강터’다 ‘꽃의 날’보다 ‘꽃날’이 좋다 ‘코로나’와 ‘달무리. 햇무리’ ‘금품수수’, 무슨 말인가? ‘―으로부터’라는 말 ‘호우’가 아니라 ‘큰비’다 물난리, 왜 되풀이되는가? ‘정체성’, 무슨 말인가? ‘인내심;보다 ’참을성‘이 좋다 ‘예의주시한다’는 말 ‘내용물’, ‘성과물’이란 말 ‘―을(를) 통해’라는 말 ‘잔해’는 ‘부스러기’라고 써야 ‘탈세’, ‘탈루’, ‘포탈’이란 말 ‘―에 의한’, ‘―에 의해’란 말 ‘반면교사’라는 말 ‘진검승부’, 이 부끄러운 말 ‘말’과 ‘언어’ ‘언어생활’과 ‘말글살이’ ‘부른다’는 말 ‘세 명’이 아니라 ‘세 사람’이다 잘못 쓰는 ‘주소지’란 말 잘못 쓰는 말, ‘인구수’ ‘―당’이란 말
넷|시 쓰기 시란 무엇인가 생활시 쓰기 시와 우리 말(1) 시와 우리 말(2) 시와 우리 말(3) 시와 우리 말(4) 시와 한자말
다섯|어린이문학과 우리 말 문학을 잘못 알고 있는 동화작가들 겨레의 어린이 문학이 되기 위하여 겨레의 말, 그리고 어린이 말 어린이문학의 말 어린이문학이 맡은 일
덧붙임|하나 이오덕 선생님 인터뷰와 ‘한자병용’에 반대하는 글 덧붙임|둘 신문기사 제목 300 덧붙임|셋 바로잡은 낱말 모음
□머리말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우리 글 바로쓰기』 세 권 뒤를 이어 ‘우리 말 살려쓰기’를 세 권쯤 묶어내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저 세 상으로 떠나 버리셨어요. 이번에 내는 책은 이오덕 선생님이 갈무리하고 마련한 ‘우리 말 살려쓰기’가운데 첫 책입니다. 하시는 일도 많아서 바쁘셨기에 머리말을 미처 써 두지 못하기도 했지만, 막상 책을 펴내자니 참으로 허전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도 몸이 좋지 못하여 머리말을 새 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두 분이 지난 1993년에 『우리 글 바로쓰기』1, 2권을 놓고 주고받은 편지로 머리말을 삼습니다. 이 편지는 『우리 글 바로쓰기3』(한길사,1995)에도 실려 있습니다. 모쪼록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 가슴과 머리에 우리 말 참사랑이 깊숙하게 자리잡고, 말뿐 아니라 일과 놀이와 사람과 삶과 어린이과 겨레와 나라와 자연과 모든 목숨붙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꿔 나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궁금하신 이야기는 인터넷 <이오덕 학교 http://25duk.cyworld.com> 게시판에 여쭈시면 고맙겠습니다) 2004년 8월 엮은이 최종규
|겹말을 쓰는 까닭| 어려운 한자말이 우리 말이 아니란 것은 농사 말에서 더욱 환하게 드러난다.
․아래 사진은 새봄을 맞아 더덕 밭이 복토를 덮고 있는 모습이다. (해인 99.4)
여기 나오는 ‘복토’가 무슨 말인가? 씨를 뿌려서 흙을 덮는다는 말이겠는데, 그렇다면 ‘복토를 덮고’ 했으니 덮는다는 말을 겹으로 썼다. ‘벼를 거두로 있다’고 하면 될 말을 ‘벼 수확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벼 수확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고 하면 세 겹이 되는 말이다. 한자말은 이와 같이 우리 말을 어지럽게 하고 어수선하게 만든다.
․그 기간 동안 위탁농을 통해서 모든 것을 다 해버려요. (이야기로 듣는 농촌 선교신학)
‘그동안’이면 될 것을 ‘기간 동안’이라 해서 괜히 ‘기간’을 넣어 놓았다. ‘위탁농을 통해서’는 ‘위탁농으로’다. 요즘은 자기 손으로 일하지 않고 돈으로 모든 일을 맡기는 ‘위탁농’이란 것이있는 모양이다.
․지난 네 해 동안의 이들의 노고가 일차 결실을 맺었음을 뜻하니. (해인 99.5)
여기 나오는 말 ‘동안의 이들의’는 토씨 ‘―의’가 잇달아 나와서 우리 말이 될 수 없다. ‘노고’는 좀 유식한 말이니 ‘수고’라 하는 것이 낫겠다.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인데, 그 다음에 또 ‘맺었음을’이란 말이 나왔다. 그래서 이 따온 글은 쉬운 우리 말로 다시 쓰면 이렇다. ‘지난 네 해 동안 이들이 수고한 첫 열매가 맺었음을 뜻하니’.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힘을 길러 주는 것, 곧 공생의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라 본다.
‘더불어’와 ‘함께’는 같은 뜻으로 쓰는 말이다. 어려운 한자말을 쓸 때 흔히 겹말이 나왔는데, 이것은 우리 말을 겹으로 썼다. 왜 이렇게 되는가? 그것은 어려운 한자말을 쓰면서 유식함을 보여주려고 하는 글버릇이 그만 우리 말은 하는(쓰는) 데서도 나타난 것이다. ‘함께’라는 말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더불어’는 글에서만 쓰는 말이다. 책만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입으로 하지 않는 말이어서 유식하게 느껴지는 ‘더불어’를 쓰고 싶어하지만, 그 말뜻이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말이 아니기에 그 다음에 다시 ‘함께’를 덧붙이게 되는 것이다. 문제가 또 있다. ‘곧 공생의 능력을’ 어쩌고 하는 뒷부분이다. 이것은 그 앞에서 쓴 ‘더불어 함께 사는 힘을’과 같은 말이다. 왜 같은 말을 되풀이했는가? 그 까닭은, 쉬운 말로 쓴 것이 시시해 보이기에 다시 어려운 한자말로 바꿔 써서 유식한 글, 권위가 있는 글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p126~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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