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12-08 19:16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5,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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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장 쓰기/한길사/1992 차례 □머리말 제1부 글이란 무엇인가 1. 글을 왜 쓰나 1) 자기표현과 글의 공해 2) 생활글과 문학작품의 관계 3) 문학이 되는 글이 따로 있는가 4) 살아 있는 말을 찾는 공부 2. 말과 글의 관계 1) 말과 글은 어떻게 다른가 2) 말과 글은 어떻게 같은가 3) 글이 말을 끌어가는 세상 4) 무더기 정신병 증세 3. 삶과 글의 관계 1) 일하기와 글쓰기 2) 보고 살피는 일 3) ‘삼다법’에 대하여 4) 글쓰기에 기술이 필요한가
제2부 문체에 대하여 1. 글말체와 입말체 1) 글말체 2) 입말체 2. 남의 문체 1) 중국글체 2) 일본글체 3) 서양글체 3. 우리 문체 1) 중국글새김체 2) 우리 이야기말체 3) 편지글체 4) 마주이야기체 5) 이야기글체 6) 연설체 4. 글월맺음과 문체 1) ‘합니다’체 2) ‘하오’체 3) 동화의 문체 ‘하더래’ ‘했지’ ‘하네’ ‘해요’ 4) 여러 가지 말끝을 쓰는 글 5. 개성과 문체
제3부 글쓰기 다섯 단계 1. 무엇을 쓰나 2. 얼거리 짜기 3. 쓰기 1) 원고지 쓰기 2) 쓰는 태도 3) 말을 살리는 글쓰기 4. 다듬기 1) 글 다듬기에서 살펴볼 점 2) 글다듬기 방법 3) 글 버릇과 남의 글 고치기 4) 글이 고쳐져서 발표되는 경우 5) 글다듬기의 실제 5. 발표 1) 글쓰기와 발표의 뜻 2) 발표하는 방법 3) 원고료에 대하여
제4부 여러 가지 글쓰기 1. 서사문 쓰기 1) 서사문은 어떤 글인가 2) 쓰는 요령과 보기글 3) 기사문 4) 사생문과 서사문 2. 감상문 쓰기 1) 생활감상문 2) 독서감상문 3) 학습․직업․감상문 4) 방송․신문․만화․영화․연극․미술․음악․체육…감상문 5) 시사감상문 6) 수필 3. 설명문 쓰기 1) 물건을 설명하는 글 2) 그림…사진…공작품 들을 설명하는 글 3) 책의 내용을 알리는 글 4) 사전의 말 풀이 5) 지리와 역사를 설명하는 글 6) 일반시설 이용 알림글과 고적 알림판의 글 7) 자기를 알리는 글 4. 논문 쓰기 1) 논문의 뜻과 특성 2) 논문을 어떻게 쓸까? 3) 논문의 차례짜기 4) 글의 보기 5. 보고문(조사기록 보고문) 1) 보고문은 어떤 글인가? 2) 보고문의 조건 3) 보고문을 쓸 때 마음둘 것 4) 보고문의 갈래 5) 보고문의 보기 6. 편지 쓰기 1) 편지글의 어제와 오늘 2) 전화와 편지 3) 편지글의 형식과 쓰는 요령 4) 편지의 종류 5) 편지글 보기 7. 일기 쓰기 1) 일기를 쓰는 보람 2) 일기글의 특징, 일기와 문학 3) 일기의 종류 4) 일기글의 보기 8. 시란 무엇인가
□머리말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 말로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풀어놓은 책이다. 여기서 나는 모든 사람들, 더구나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가 겪은 온갖 일들과 생각을 글로 마음껏 나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방법을 여러 모로 궁리하여 애써 적었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한 결로 이어 놓은 뜻은 우리 말로 쓰는 정직한 글,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쓴 글이 가장 귀한 글이고 가치가 있는 글이란 믿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도 어렸을 적부터 글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살았고, 글쓰기도 교실에서 배우고 책으로 익히면서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고 하여 굽이굽이 먼 길을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배운 교과서와 읽은 책들의 대부분이 글과 글쓰기를 잘못 가르쳤고,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애써 걸어온 글쓰기의 길이 허깨비한테 끌려다닌 길이었구나 하고 깨달은 것은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고서도 10년이나 지난 뒤였다. 그때부터 나는, 지금부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라도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쓰기를 중심으로 인간교육을 하기에 이른 까닭이 이러하다. 그런데 아이들 교육을 바로잡는 일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어른들이 모두 잘못된 교육을 받아 잘못된 문장관과 교육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깨뜨릴 수가 없었다. 더구나 문학작품을 쓴다는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 교육을 그르치고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래서 이번에는 아이들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어른들이 하고 있는 글쓰기의 태도며 방법이며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기회가 있으면 나도 문장론 같은 것을 써봐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책에는 학자들이나 남의 말을 인용한 것이 거의 없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문심조룡』의 한 대문을 인용한 것만은 생각나는데, 그 책도 누가 말해주어서 인용한 대문만 보았을 뿐이다. 아무튼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겪으면서 깨달은 바를 바탕으로 하였고, 더구나 교단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발견한 것, 얻게 된 신념을 바탕으로 해서 썼다.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삶을 가꾸는 글쓰기 방법을 이번에는 어른들의 글쓰기 방법으로 발전시켰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어떤 문장작법 종류의 책과도 다르다고 해야 하겠다. 글을 본 관점이 다르고, 쓰는 태도와 쓰는 방법을 말해놓은 것이 다르고, 더구나 문하그이 자리를 매겨놓은 것이 다르다. 지금까지 나왔던 문장작법이나 글쓰기 방법을 이야기한 책들은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방법을 말해놓거나. 생활글 쓰는 법을 말하더라도 문학작품과는 따로 나누어 놓았는데, 나는 여기서 이 두 가지를 같은 자리에 두었다. 좀더 분명하게 말하면, 모든 글쓰기는 자기를 나타내는 짓이고, 따라서 모든 글은 삶이 바탕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고 보았고,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문학이라고 말해온 글은 생활글과는 수준이 다른 한 단계 높은 자리에 있는 글이 아니라, 삶을 나타내는 모든 글이 자리잡고 있는 넓은 자리의 한쪽, 그 어느 특수한 자리게 있다고 보고 그렇게 다룬 것이다. 어른들의 글쓰기도 자기의 삶을 정직하게 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우리 문학이 크게 잘못된 글쓰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문학은 겨레의 삶과 말에서 멀리 떠나 있었다. 그것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방안에 앉아 글만 쓰는 데서 오는 필연의 결과였다. 삶과 말에서 떨어져 나간 문학은 일부 사람들의 오락물 구실밖에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 문장은 갈수록 사실과 사물을 떠난 병든 말의 희롱으로 떨어진 것이다. 우리 문학작품이 일본말과 일본말법을 퍼뜨려 우리 글 전체를 오염하고 우리 말을 병들게 한 사실도 바로 보아야 한다. 이래서 일하면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글을 쓰도록 해야 말을 살리고 글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야 문학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틔어질 것이라 믿는다. 모두 4부로 나눈 이 책에서, 제1부는 글을 어떻게 보고 어떤 태도로 써야 하는가를 말했다. 여기서 말과 글의 관계, 삶과 글의 관계도 밝혀 놓았다. 글을 올바르게 보는 관점을 세우려고 한 것이다. 제2부에서는 문체에 대한 생각을 썼는데, 나는 우리 글에서 문체란 것을, 글을 쓰는 자리나 태도에 따른 말씨나 말법의 다름으로 몇가지를 나누었을 뿐이고, 글을 쓰는 사람의 개성에 따른 우리 문체를 가졌다고는 보지 않기 때문이다. 제3부는 글쓰기 단계론이라 할 수 있다. 주제를 정하거나 쓸 거리를 잡는 일에서 시작하여 글을 발표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글쓰기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 그 단계마다 해야 할 일, 가져야 할 태도를 생각해보았다. 제4부에서는 글의 갈래를 여덟가지로 나누어 그 갈래마다 글의 특성, 쓰는 방법 들을 실제 글의 보기를 들어 말했다. 여기서 소설은 서사문에 넣었고, 수필은 감상문이 중심이 된 글로 보았다. 끝으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으로 인사를 드려야 할 분들이 있는데, 미리 양해도 어지 못하고 들어놓은 보기글을 쓴 여러 분들이다. 더구나 보기글을 감상하고 비판하면서, 중국글자말과 일본말법 따위를 낱낱이 지적해놓았으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이 책의 성격에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고, 또 오직 우리 말을 살리기 위한 마음에서 한 일이니 널리 봐주기 마란다. 우리 말을 살리지 못하는 글이라면 차라리 안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읽는 이들에게도 어쩌면 좀 지루하지 않을까 싶을 만치 어느 정도 알뜰히 보기글을 바로잡아 놓았다. 나도 글을 얼마나 잘못 썼던가를 들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는 분들이 “너는 뭐냐?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책에서 글을 이 따위로 쓰고…” 하면서 나무라고 꾸중한다면 머리 숙여 그 꾸중을 듣는 수밖에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틈틈이 쓴 글이라, 마음 같아서는 이 책 원고를 두어 해쯤은 그대로 두고서 몇 번이나 읽어 더 보태고 깎고 고치고 하여 온전한 것으로 내고 싶었지만, 출판사의 권유에 따라 이대로 내보이게 되었다. 모자란 점이나 잘못된 점을 읽는 분들이 가르쳐주면 다행이겠다. 1992년 1월 이오덕
2) 입말체 입말체란 입으로 하는 말을 잘 살려서 쓴 문체다. 입말체 문장은 그것을 읽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읽는 것을 귀로 들었을 때도 바로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글이다. 이 입말체로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글은 아무래도 소설과 동화다. 이광수 때부터 오늘날까지 소설과 동화의 문장은 비록 잘못된 외국말법에서 아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입말을 살려서 쓰는 길로 걸어왔다고 할 수 있고, 소설과 동화의 글이라면 입으로 하는 말 그대로 쓰는 글이라고 누구든지 알고 있다. 소설이나 동화의 문장은 다른 자리에서 말할 것이기에 여기서는 입말체 문장의 본보기로 성경의 한 대목을 들어 본다. 다음은 『공동번역 성서』(대한성서공회․1977) ‘요한의 복음서’ 첫머리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지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면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이 『공동번역 성서』의 문장이 얼마나 입말을 잘 살려 썼나 하는 것은 다음에 드는 『신약전서』(대한성서공회․1939)의 글과 견주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태초에 말삼이 계시니라.이 말삼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삼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나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최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앞에서 든 공동번역 성서는 글월의 끝이 모두 ‘―다’로 되어 있지만, 뒤에 든 『신약전서』는 글월의 끝이 모두 ‘―라’로 되어 있어, 이것만 보아도 오늘의 사람들에게는 『신약전서』의 문장이 글말체라고 느끼기에 충분하지만,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는 중국글을 새겨 읽는 꼴이 되어 우리가 입으로 하는 말이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글이 되어 있다. 지금 든 글은 기독교의 철학을 말한 글이지만, 이번에는 같은 성경에서도 어떤 사건을 이야기해 놓은 대문을 보기로 하자.
사람들은 예수를 붙잡아 대사제 가야파의 집으로 끌고 갔는데 거기에는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모여 있었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를 뒤따라 대사제의 관저에까지 가서 일의 결말을 보려고 안으로 들어가 경비원들 틈에 끼어 앉아 있었다. 대사제들과 온 의회는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에 대한 거짓 증거를 찾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와서 거짓 증언을 하였지만 이렇다 할 증거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두 사람이 나타나서 “이 사람이 하느님의 성전을 헐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하고 증언하였다. 그 말을 듣고 대사제가 일어나 예수께 “이 사람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할 말이 없는가?”하고 물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대사제는 다시 “내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니 분명히 대답하여라. 그대가 과연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그것은 너의 말이다”하시고는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이제부터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또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듣고 대사제가 자기 옷을 찢으며 “이 사람이 이렇게 하느님을 모독했으니 이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소? 여러분은 방금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듣지 않았소? 자,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하고 묻자 사람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하고 아우성쳤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또 어떤 자들은 뺨을 때리면서 “그리스도야, 너를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맞추어 보아라”하면서 조롱하였다. (「마태오」26장 57~68절)
예수가 재판을 받는 광경을 보여준 대목인데, 옛날 이야기를 읽는 소설로 옮겨 적어도 이보다 별로 더 잘 쓸 수는 없겠다 싶을 만치 우리 말을 잘 살려 쓴 글이다. 이제 우리 글은 이런 이야기뿐 아니라 수필이고 논문까지 모든 글을 이와 같은 입말로 써야 할 것이다. (p.86~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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