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07-26 23:36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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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우리 모두 시를 써요》를 내면서 머리말 제 1부 어린이의 말은 시다 1. 박자가 안 맞아! -시와 감동① 2. 나도 기분 좋았다 -시와 감동② 3. 진짜 말과 가짜 말 -시와 감동③ 4. 솜씨․재미․감동 -시와 감동④ 5. 남의 말과 자기 말 -시와 감동⑤ 6. 감동과 말재주 -시와 감동⑥ 7. 겪은 일과 생각 8. 책가방 들고 간다 -겪은 일 쓰기 제 2부 어린이의 삶은 시다 1. 삶에서 우러난 감동 -시란 무엇일까?① 2. 진정을 토해 낸 말 -시란 무엇일까?② 3. 겪어 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것을 -어린이 시와 어른의 시 4. 틀에 매이지 않고 써야 -자유시․산문시․정형시 5. 줄글로 쓰는 시 -산문시를 써 보세요 6. 마음속에 잡힌 것을 정확하게 -개념을 깨부수는 일 7. 보고 들은 것을 그 자리에서 -사생시 쓰기 8.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감동을 되살려 내도록 9. 일(놀이)한 것을 써야 -머리로 만들지 말고 10. 누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말을 건네는 시 11. 흥이 나서 저절로 나오는 말 -노래하듯 쓰는 시 12. 삶 속에 들어온 풍경 -그림 같은 시 제 3부 어른도 어린이와 함께 1. 시란 무엇인가 -자유와 희망을 주는 세계 2. 살아 있는 말의 재미 -시늉말에 대하여 3. 필요 없는 말 줄이기 4. 자연과 사람 5. 정직하게 쓴다는 것 6. 행동과 생각의 표현 7. 진정은 머리로 만들어 낼 수 없다. 8. 어른의 시와 어린이 시 9. 문학 작품을 흉내내지 않도록 10. 시의 길, 사람의 길 작품 찾기 《우리 모두 시를 써요》를 내면서 이 책은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를 아주 많이 고쳐서 내는 책으로, 이름도 새로 지었습니다. 5년 전에, 고치기 이전 책이 나온 뒤로 다행스럽게도 많은 어린이들이 읽어 주었고, 부모님들과 선생님들께서도 관심을 가져 주셔서 우리나라의 잘못된 동시 쓰기 흐름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읽어 보니 영 허술하고 엉성한 데가 많고, 잘못된 대문도 여기 저기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글을 아주 새로 쓰듯이 고치고 다듬어서 내게 되었습니다. 보기글도 겹친 것은 빼고, 몇 편은 바꾸어 넣고, 새것을 보충하기도 했습니다. 시 이야기도 더 보태어 쓴 것이 많습니다. 잘못 쓴 낱말도 모두 바로잡았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기에 바로잡은 보기를 몇 가지 들어 봅니다. ‘비교해서’는 ‘견주어서’로 고쳤고, ‘특히’는 ‘더구나’로 고쳤습니다. ‘전혀’는 ‘아주’로, ‘각자’는 ‘저마다’로 썼습니다. ‘체험한’은 ‘겪은’으로 썼고, ‘공감하게’는 ‘함께 느끼게’로 썼습니다. ‘구체적인 상황’은 ‘뚜렷한 형편’이라 했습니다. ‘구체적’ ‘일반적’ ‘개념적’이렇게 무슨 ‘-적’이란 말은 아주 널리 쓰지만, 이 말은 일본식 말이 분명하기에 이 책에는 일체 쓰지 않았습니다. ‘-이 있어서’라는 일본말법도 아주 안 썼습니다. ‘표현한’이란 말은 될 수 있는 대로 ‘나타낸’으로 썼고, ‘직접’ ‘인간’과 같은 말도 ‘바로’ ‘사람’ 이렇게 썼습니다. 시고 무슨 글이고 이제는 아무리 좋은 느낌과 생각을 글로 쓴다고 해도 우리말을 병들게 하고 우리말을 죽이는 글을 쓴다면 차라리 안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 ‘어린이’란 말과 ‘아이’란 말은 한 가지로 통일하지 않고 두 가지를 다 썼습니다. 실제로 두 가지 말이 다 쓰이고 있고, 또 ‘어린이’란 말이 더 알맞은 경우가 있고 ‘아이’란 말이 더 자연스럽게 쓰이는 때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맨 끝에 〈작품 찾기〉표를 새로 넣었습니다. 오랫동안 바라던 고침판을 이제야 내게 되어 마음이 놓입니다만 그래도 온전치 못한 데가 있겠지요. 어리이 여러분, 부디 잘 읽어서 좋은 시 많이 써 주시고 우리말을 시로 살려 주시기 바랍니다. 1993년 4월 이오덕 머리말 시는 누구든지 쓸 수 있다. 그리고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이런 생각을 나는 오래 전부터 하고 있어서 이것을 많은 어린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이제야 겨우 그 생각을 책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책의 머리말을 몇 줄 쓰려고 하는데 마침 국민학교에서 시 지도를 훌륭하게 하시는 이 호철 선생님이 최근에 내신 학급 문집을 보내 오셨기에 거기 실려 있는 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팔려 가는 소 -경산 부림 6년 조동연 소가 차에 올라가지 않아서 소 장수 아저씨가 ‘이라’하며 꼬리를 감아 미신다. 엄마 소는 새끼 소를 놔두고는 안 올라간다며 눈을 꼭 감고 뒤로 버틴다. 소 장수는 새끼를 풀어 와서 차에 실었다. 새끼가 올라가니 엄마 소도 올라갔다. 그런데 그만 새끼 소도 내려오지 않는다. 발을 묶어 내릴려고 해도 목을 맨 줄을 당겨도 엄마 소 옆으로만 자꾸자꾸 파고 들어간다.
결국 엄마 소는 새끼만 보며 울고 간다.
송아지를 두고 엄마 소가 팔려 가는 광경을 보고 쓴 시입니다. 이 아이는 송아지와 엄마 소가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프게 여겼습니다. 아마 눈물도 흘렸을 것입니다. 글에는 소가 불쌍하다든지, 눈물을 흘렸다든지 하는 말이 없지만, 그런 마음이 없이는 결코 소의 모양을 이렇게 쓸 수가 없습니다.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은 참 기쁨도 모릅니다. 그리고 시를 쓸 수 없습니다. 어른들은 생명을 짓밟아 죽이기를 예사로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차츰 나이 많을수록 사람은 이상하게 되어 갑니다. 어린이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이 슬픔도 눈물도 모르고 돌같이 굳어 버린 마음을 가진 어른들과는 달리, 참으로 곱고 부드러운 마음,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개미 한 마리를 짓밟고도 조금도 가엾다는 느낌이 안 든다면 그 아이는 벌써 비참한 어른이 된 아이입니다. 이런 어린이는 시를 못 씁니다. 남의 아픔을 내 아픔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 많아도 어린이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입니다. 슬픔과 눈물을 모르는 사람은 시를 써도 남의 흉내를 낼 뿐입니다. 말재주를 부린 거짓 시는 이래서 나옵니다.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의 참과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눈물과 웃음을 지키기 위해 시를 읽고 시를 씁시다. 시를 쓰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1988년 8월 15일 이오덕 5. 정직하게 쓴다는 것 여기 또 한 편, 자연을 글감으로 한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벌써 10년쯤 전에 어느 방송국으로 보내온 작품들 중에서 가져 뽑았던 것인데, 도시에 있는 국민학교 6학년 남자아이가 쓴 〈아침〉이란 제목의 시입니다. 해 돋는 이른 아침 창문 활짝 열어젖히면 솔 향내 묻은 바람 뜰 안 하나 가득 차 넘쳐요
감밤내 숲 속에서 단꿈 꾸던 참새 한 마리 두 마리 날아 내려와 해말간 구슬처럼 고운 목청 가다듬어 노래 불러요.
나뭇잎에 매달린 이슬 방울 햇살 받아 더 예쁜 얼굴로 환히 웃어 주네요. 신선한 아침 풍경을 나타낸 시입니다. 모두 3연으로 짜여 있는데, 첫째 연에서는 솔 향내 풍기는 바람은, 둘째 연에서는 구슬 같은 목청을 울리는 참새를, 셋째 연에서는 예쁜 얼굴로 웃는 이슬방울을 그려서 상쾌한 아침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시를 이렇게 몇 개의 연으로 나누고, 생각을 짜서 쓴 것을 보면, 많이 써 본 어린이 같습니다. 어린이 시는 형식에 매이지 않고, 순간에 느낀 것을 토해 내듯이 자연스럽게 쓰는 것이지만, 5․6학년쯤 되면 이와 같이 느낌을 보람 있게 나타내기 위해 쓰는 차례를 생각하고, 말을 다듬는 공부도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바깥을 바라보면서 바람과 새 소리와 이슬방울―자연을 아름답게 느끼는 마음은 분명히 귀하다고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괴로운 삶에 매이지 않고 이렇게 자연을 보고 듣고 즐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럴 수가 없는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요즘은 그렇지요,. 그런데, 나는 이 시에서 적지 않은 불만이 있습니다. 가장 큰 불만은, 글쓴이의 ‘어린이다운 살아 있는 감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6학년이니까 ‘소년다운 마음’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다시 말하면 글쓴이만이 가진 마음의 세계나 삶의 세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시 앞에 학년과 이름을 안 썼다면 어른이 썼는지 아이가 썼는지 모를 것입니다. 농촌 아이가 썼는지 도시 아이가 썼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나라 말로 옮겨 놓으면 어느 나라 사람이 썼는지도 모르겠지요. 이래서는 좋은 시라 할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면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삶이 없다는 것은 온 몸으로 겪은 것을 쓴 것이 아니라 머리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서 다시 이 작품을 보면 여기 나오는 말들이 모두 지은이의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지어 만들어 낸 ‘개념’의 말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해돋는 이른 아침’ ‘활짝 열어젖히면’ 솔 향내 묻은 바람‘ ‘뜰 안 가득 차 넘쳐요’ ‘단꿈 꾸던 참새’ ‘해말간 구슬처럼 고운’ ‘목청 가다듬어’ ‘나무잎에 매달린 이슬 방울’ ‘더 예쁜 얼굴로’ ‘환히 웃어 주네요’ 이와 같이 어느 한 구절도 그때 그 자리에서만 잡은 것이 없고 모두 일반스러운 느낌을 나타내는 말로 썼습니다. 이렇게 머리로 고운 말을 적당히 만들어 쓰는 것은 어른의 짓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른스럽게 재주를 많이 익힌 아이가 쓴 것이 아니면, 어느 어른이 지나치게 손을 댄 것이라 봅니다. 다시 한 걸은 더 나아가 살펴봅시다. 첫 연에서 ‘솔 향내 묻은 바람’이라고 했는데, 바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은 이 아이의 실제 느낌이 아니고 아무래도 어른들의 글 흉내라고 생각됩니다. 둘째 연에서는 참새들이 숲에서 잔다고 보고, 그 참새들이 한 마리 두 마리 내려오다니 어디에 내려왔는가? 그리고 ‘해말간 구슬처럼 고운’이란 말은 참새 소리에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만약 맞다고 하면 어떤 새 소리에도 맞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념으로 된 표현’이라 할 수밖에 없지요. 또 참새가 날아 내려왔다고 하면 땅바닥에 무엇을 주워 먹기 위해 내려왔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참새가 사람이 사는 집안 마당에 내려와 무엇을 주워 먹을 때는 한 번 쪼아 먹고 요리 조리 살피고 또 쪼아 먹고 둘레를 살피고 하면서 경계하다가 날아갑니다. 결코 마당에 내려와 한가롭게 ‘해말간 구슬처럼 고운 목청 가다듬어’ 노래를 부르지는 않습니다. 셋째 연에서는 ‘나무잎에 매달린 이슬 방울’을 본 것같이 썼는데, 이것도 머리로 만든 말입니다. 지금 방안에서 창문을 열고 멀리 바라보고 있는데, 어떻게 이슬방울이 예쁜 얼굴로 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런 시를 다음과 같이 변명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시는 실제로 보고 들은 것만을 쓰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하거나 상상한 것도 쓸 수 있지 않는가?” 그러나 이 시는 실제로 겪은 것을 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거짓스럽게 느껴집니다. 자기의 마음과 삶을 정직하게 쓰려고 하지 않고 ‘이런 것을 써야 근사한 시가 되겠지’하고 썼으니 말입니다. 실제로 겪지 않은 일은 상상으로 쓸 때는 바로 그것이 상상임을 읽는 이들이 알도록 써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거짓말이 되지요. 이것이 어른의 시와 어린이 시가 다른 점입니다. 다음 시를 읽어 보세요. 까만새 /안동 대곡분교 3년 정부교 까만 새가 낮에는 돌다물에 들어가 있다가 밤이 되면 아무도 모르게 남의 집 양식을 후배 먹고 배가 둥둥 하면 저 먼 산에 올라가 하늘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하늘로 올라가서 달과 별과 춤을 춘다. 이 시는 어떤 사실을 보고 쓴 것이 아니고 마음속의 생각을 썼습니다. 생각을 썼다는 것은 누구나 읽어 보면 다 압니다. 깊은 산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한 어린이가 자유로운 마음과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펼쳐 놓은 훌륭한 시이니 잘 새겨 맛보도록 하세요. 이렇게 생각을 쓰는 것이 아니고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느낀 것을 쓸 때는, 그것을 보고 듣고 느낀 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또렷하게 붙잡아서 써야 합니다. 물론 마음속의 생각이나 상상을 쓸 때도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써서는 안 되지요. 절실하게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대로 정직하게 써야 합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이것이 시뿐 아니라 모든 글쓰기의 기본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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