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07-26 23:33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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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제 1부 어린이의 말은 시다 1. 박자가 안 맞아! -시와 감동① 2. 나도 기분 좋았다 -시와 감동② 3. 진짜 말과 가짜 말 -시와 감동③ 4. 솜씨․재미․감동 -시와 감동④ 5. 남의 말과 자기 말 -시와 감동⑤ 6. 감동과 말재주 -시와 감동⑥ 7. 겪은 일과 생각 8. 책가방 들고 간다 -겪은 일 쓰기 제 2부 어린이의 삶은 시다 1. 삶에서 우러난 감동 -시란 무엇일까?① 2. 진정을 토해 낸 말 -시란 무엇일까?② 3. 겪어 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것을 -어린이 시와 어른의 시 4. 틀에 매이지 않고 써야 -자유시․산문시․정형시 5. 제멋대로 쓰는 시 -산문시를 써 보셔요 6. 마음속에 잡힌 것을 정확하게 -개념을 깨부수는 일 7. 보고 들은 것을 그 자리에서 -사생시 쓰기 8.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감동을 되살려 내도록 9. 일(놀이)한 것을 써야 -머리로 만들지 말아야 10. 누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말을 건네는 시 11. 흥이 나서 저절로 나오는 말 -노래하듯 쓰는 시 12. 삶 속에 들어온 풍경 -그림 같은 시 제 3부 어른도 어린이와 함께 1. 시란 무엇인가 -자유와 희망을 주는 세계 2. 살아 있는 말의 재미 -시늉말에 대하여 3. 필요 없는 말 줄이기 4. 자연과 인간 5. 정직하게 쓴다는 것 6. 행동과 생각의 표현 7. 진정은 머리로 만들어 낼 수 없다. 8. 어른의 시와 어린이의 시 9. 문학 작품의 흉내를 내지 않도록 10. 시의 길, 인간의 길 머리말 시는 누구든지 쓸 수 있다. 그리고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이런 생각을 나는 오래 전부터 하고 있어서 이것을 많은 어린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이제야 겨우 그 생각을 책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책의 머리말을 몇 줄 쓰려고 하는데 마침 국민학교에서 시 지도를 훌륭하게 하시는 이 호철 선생님이 최근에 내신 학급 문집을 보내 오셨기에 거기 실려 있는 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팔려 가는 소 -경산 부림 6년 조동연 소가 차에 올라가지 않아서 소 장수 아저씨가 ‘이라’하며 꼬리를 감아 미신다. 엄마 소는 새끼 소를 놔두고는 안 올라간다며 눈을 꼭 감고 뒤로 버틴다. 소 장수는 새끼를 풀어 와서 차에 실었다. 새끼가 올라가니 엄마 소도 올라갔다. 그런데 그만 새끼 소도 내려오지 않는다. 발을 묶어 내릴려고 해도 목을 맨 줄을 당겨도 엄마 소 옆으로만 자꾸자꾸 파고 들어간다.
결국 엄마 소는 새끼만 보며 울고 간다.
송아지를 두고 엄마소가 팔려 가는 광경을 보고 쓴 시입니다. 이 아이는 송아지와 엄마소가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프게 여겼습니다. 아마 눈물도 흘렸을 것입니다. 글에는 소가 불쌍하다든지, 눈물을 흘렸다든지 하는 말이 없지만, 그런 마음이 없이는 결코 소의 모양을 이렇게 쓸 수가 없습니다.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은 참 기쁨도 모릅니다. 그리고 시를 쓸 수 없습니다. 어른들은 생명을 짓밟아 죽이기를 예사로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차츰 나이 많을수록 사람은 이상하게 되어 갑니다. 어린이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이 슬픔도 눈물도 모르고 돌같이 굳어 버린 마음을 가진 어른들과는 달리, 참으로 곱고 부드러운 마음,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개미 한 마리를 짓밟고도 조금도 가엾다는 느낌이 안 든다면 그 아이는 벌써 비참한 어른이 된 아이입니다. 이런 어린이는 시를 못 씁니다. 남의 아픔을 내 아픔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 많아도 어린이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입니다. 슬픔과 눈물을 모르는 사람은 시를 써도 남의 흉내를 낼 뿐입니다. 말재주를 부린 거짓 시는 이래서 나옵니다.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의 참과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눈물과 웃음을 지키기 위해 시를 읽고 시를 씁시다. 시를 쓰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1988년 8월 15일 이오덕 7. 보고 들은 것을 그 자리에서 -사생시 쓰기 자, 이번에는 ‘보고 쓰는 시’를 실제로 써 보기로 합시다. 여러분은 지금 각자 있는 자리에서 편한 자세로 앉아 다른 모든 생각을 떨쳐 버리고(아니 다른 생각을 해도 좋아요) 바로 앞에 있는 그 무엇을 가만히 바라보셔요. 방안이라면 벽에 걸린 달력이나 그림․사진․시계․옷… 따위가 있을 것이고 창밖이라면 담벽이라든가 지붕․나무․전봇대․하늘․구름… 같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온갖 모양의, 온갖 크기의, 온갖 색깔의 물건이 있고 자연이 있고 움직이는 생물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내는 소리, 풍기는 냄새와 향기도 다 다르고 우리에게 주는 느낌도 다 다릅니다. 또한 같은 것을 보고 듣고 해도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마다 모두 달리 느낍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산을 보아도 아침에 본 산과 낮에 본 산, 저녁에 본 산이 다르고, 같은 아침이라도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이 달리 보이고 달리 느껴집니다. 어쨌든 그 무엇을 가만히 바라보셔요. 너무 여러 가지를 다 보려고 하지 말고 한 가지를 보셔요. 아주 멀리 있는 것이라도 좋고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이라도 좋으니 어느 한 가지 대상을 정해서 그것을 자세히 깊이 보는 것입니다. 그 모양 그 색깔, 움직임, 소리와 향기 등을 깊이 보고 듣고 맡고, 그 보는 대상이 되어 보기도 해서 한참 동안 가만히 그렇게 있으면 거기서 또 다른 느낌이나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속에 환히 떠오르는 생각 혹은 갑자기 번개같이 스쳐가는 어떤 느낌이 있으면 그것을 놓지 말고 붙잡도록 하셔요. 아 참 아름답구나! 참 귀엽구나! 참 그렇지! 혹은 참 가엾구나! 기쁘구나!… 등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붙잡아 그 순간의 생생한 느낌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자기의 입말(입으로 지껄이는 말)로(아름답다든지 귀엽다든지 가엾다든지 하는 말을 될 수 있는 대로 쓰지 말고)나타내어 보셔요. 이것이 보고 들은 것을 쓰는 시 곧 사생시(그림시)입니다. 이 그림시를 다음에 몇 편 들어 보겠습니다. 이 시들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그 느낌을 잡아서 어떤 말로 써 놓았는가를 생각해 보셔요. 이슬 -안동 대곡분교 3년 박귀봉 풀잎에 모여서 간들간들 웃고 있네. 말강말강한 기 앉아 있네. (6월 18일) 풀잎에 이슬이 모여 있는 모양을, 곱다든지 아름답다든지 하는 말을 쓰지 않고 간들간들 웃고 있다고 하고 말강말강한 기 앉아 있다고 했습니다. ‘간들간들’은 이슬이 움직이는 모양을 웃는 것 같이 본 말이고 ‘말강말강’은 손에 닿는 느낌을 말한 것입니다. 이슬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을 때의 느낌을 잘 붙잡아 자기의 말로 썼습니다. 이것은 바깥에 나가 본 것입니다. 본 것을 쓰기 위해서는 이렇게 흔히 들이나 냇가나 거리에 나가서 관찰을 합니다. 방안에 앉아서 보기보다 바깥에 나가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더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구름 -상주 청리 3년 박선용 구름이 햇님을 꼭 안고 놔 주지 않았다. 그런데 햇님이 가랑이 쌔로 윽지로 빠자 나왔다. (10월 31일) 구름이 지나가면서 햇님을 가리는 순간을 쳐다보다가 느낀 것입니다. 이럴 때는 구름이 자나가는 것이 아니라 햇님이 자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구름은 햇님이 못 가게 꼭 안고서 놔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요. 이 어린이는 햇님이 구름의 가랑이 사이로 억지로 빠져 나왔다고 했습니다. 구름과 햇님이 살아 있는 것같이 느꼈습니다. 이슬이고 구름이고 햇님이고 풀이고, 그것을 볼 때 살아 있는 것으로 보고 느끼면 재미있는 시가 됩니다. 이 시에도 ‘쌔로’(사이로), ‘윽지로’(억지로)와 같이 자기가 평소에 입으로 하는 말을 쓴 것이 눈에 띕니다. 입으로 하는 말을 그대로 쓰면 시가 살아납니다. 그 까닭은 남의 글이나 책에서 배운 말이 아니라 글을 쓴 아이가 진정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뻐꾹새 -상주 청리 4년 김순옥 뻐꾹새 한 마리 어디서 자꾸 울고 있다. 뻐꾹새 우니 슬픈 생각도 들고 먼 바다도 가 보고 싶다. (5월 25일) 이것은 소리-뻐꾸기 소리를 듣고 쓴 시입니다. 가만히 뻐꾸기 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쩐지 슬픈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어디 먼 곳으로, 먼 바다 같은 데를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가만히 그 무엇을 바라보거나 듣고 있다가 문득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느낌이나 생각’을 잡은 것입니다. 필통 -성주 대서 6년 이범석 필통은 연필이 잠자는 집이다.
필통은 연필이 작아질 때마다 마음 아파한다. 필통 속에 들어 있는 연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을 때의 느낌을 쓴 시입니다. 연필을 안고 있는 필통은 연필이 자꾸 깎여 작아지는 것을 마음 아프게 여기는 것 같고, 그래서 연필의 엄마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지요. 이 시는 다음의 시와 그 느낌이 닮았습니다. 연필이 일을 하다가 따뜻한 엄마 품에 가만히 누워 있다. (4년, 남. 76년 11월) 그러나 흉내를 낸 것은 아닙니다. 저도 몰래 닮을 수도 있겠지만, 이 시에서 다시 새로운 느낌을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스모스 -상주 청리 4년 황순분 코스모스 아름답다. 길 옆에 가는 사람 예쁘다. 코스모스는 길 가는 사람이 반가와서 어쩔 줄을 모른다. (9월 28일) 길 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본 느낌입니다. 코스모스가 아름다우니 길 가는 사람도 예뻐 보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가 길 가는 사람이 반갑다고 좋아서 몸을 흔드는 것같이 보았습니다. 눈 눈이 많이 오니 서로 니찔라고(떨어질라고) 해서 또 어떤 거는 너 먼저 니쪄(떨어져) 어떤 거는 안 죽을라고 땅에 떨어지면 죽는다고 너 먼저 니쪄 하고 다른 거를 막 떠다 밉니다.
소르르 녹으면서 아이구 나 죽네 합니다. (12월 27일) 이것은 교실에 앉아서 창 밖에 눈이 오는 모양을 가만히 바라보고 쓴 시입니다. 눈송이가 떨어져 내리는 모양이 재미가 있어 바라보고 있으니 그 눈송이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 떨어지는 눈송이들의 말을 적어 놓았는데, 그 이야기들이 재미있고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자기의 말로 쓴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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