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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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2-04-01 15:29
    떨어진 목련 꽃봉오리 '행복이'
     글쓴이 : 한재경
    조회 : 715  

    1. 떨어진 목련꽃봉오리 '행복이'


    우리 반 창문 너머로 나무 여덟 그루가 있다. 매실나무 다섯 그루, 목련 세 그루. 이 나무들은 거기에서 사는 까닭으로 우리반 동무가 되었다. '교실 밖 친구' 


    3월, 아이들이 우리 반에 들어와 자리를 잡아갈 무렵, 꽃은 피려한다. 그 꽃이 피는 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고 싶었다. 운동장에 나갈 일 있으면 그 나무를 한 번은 보고 갔다. 또 3월 21일 부터는 '나무 일꾼'을 뽑아서 하루에 한 번 꽃봉오리를 보고 오게 했다. 반 아이들에게는 '꽃이 피려하면 그때 나가서 보자'했다. 


    3월 말, 내가 감기에 걸려 하루 이틀 수업을 제대로 못했다. 29일 퇴근길에 꽃을 보니 목련은 봉오리가 살짝 벌어졌고, 매화는 꽃봉오리가 땡땡해져서 터지기 직전이었다. '아 오늘 밤에라도 꽃이 필 수 있겠다.'싶었다. 가까이서 사진을 찍었다. 



    31일, 5교시 봄 시간에, 지난 한 달 사이에 나와 나무 일꾼이 찍은 꽃봉오리 사진을 보여줬다. 터지기 직전의 꽃을 보고 아이들은 예쁘다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거 어제, 그제 찍은 거에요. 어때요? 터지기 직전이죠? 이제 꽃 필거예요. 어쩌면 지금 피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오늘이 그 꽃이 핀 날이고, 그 꽃의 생일인 거예요. 우리 보러 나갈거예요."

    "이 나무들은 우리들이 부르는 노래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듣는 생명이에요. 그런 나무의 꽃 피는 일을 우리가 보러 가자구요."


    키가 작은 아이들을 위해 의자 두개를 들고 나갔다. 꽃 봉오리들이 정말 터지려는 자세로 스스로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먼저 하나를 찾았다. 아이들이 찾을 때까지 말하지 말았어야하는데 실수로 말이 터져나왔다. "어 저기 폈다." 아이들이 어디요 어디요하며 눈에 불을 켰다.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려다 실내화를 신은채 화단에 들어가버렸다. "여기 여기" 아이들도 찾았다. "와! 폈다." 의자에는 차례대로 올라가게 했고, 난 또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을 꽃에 다가가게 했다. "목마 탈 사람 손! 다섯 사람만 할 거예요. 선생님도 힘드니까요." 아이들은 손을 들었고, 나는 그 핀 꽃 바로 아래로 들어가 아이들을 목마 태웠다. 

    "무슨 색이야?"

    "하얀 색이요."

    "분홍 색은 없어?"

    "네 하얀 색이요."

    "어떤 모양이야?"

    "다섯개 있어요."


    그렇게 꽃을 보던 아이들은 또 다른 생명을 찾았다. 민찬이가 말한 '왕거미'소리에 많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갔고, 많은 아이들은 땅에서 무언가를 주워서 내게 가져왔다. "이게 뭐예요?" "열매야." "어떻게 해요?" "있던 곳에 놓아주면 좋겠다." 그러던 가운데 아이린이가 "큰일 났어요. 이게 떨어졌어요." 하며 아직 입을 다물고 있는 목련 봉오리를 가져왔다. 나는 목련 봉오리를 받았다. 


    시간이 다 돼, 교실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꽃도 잘 봤고, 질서도 잘 지켰음을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목련봉오리를 실물화상기에 올려놓고 보여줬다. 

    "이거 보세요. 이거 뭐지요?" 

    "얘는 한 겨울을 맨 몸으로, 영하 20도에도 보일러도 안 틀고, 이불도 안 덮고 이겨내서 이제 겨우 꽃을 피우려는데 이렇게 떨어졌어요. 어떻게 하죠?"

    아이들은 슬퍼하기도 하고, 누가 그랬는지 따져 묻기도 했다. 

    "그건 모르죠. 바람에 떨어졌을 수도 있고, 사람이 장난으로 뜯어냈을 수도 있죠. 그런데 어찌되었든, 얘는 그렇게 기다리던 꽃 피는 날을 코앞에 두고 떨어졌어요."

    아이들도 나도 같은 마음으로 안타까웠다. 


    "혹시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지만, 한 번 이 꽃 살려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오늘 좀 남아서 해볼래요?"

    이 말에 반 아이들 거의 모두가 손을 든다. 나는 날마다 바뀌는 오늘 앞번호 혜정이와 아이린에게 일을 맡겼다. 


    아이린은 자기 할아버지가 식물을 잘 안다고 말해서, 나는 그럼 아이린이 좀 알아오라고 말했다. 아이린은 물을 떠오고, 혜정이는 화분에 흙을 담고 목련 봉오리를 꽂았다. 두 아이더러 이름을 지으라고 했다. 한 아이는 '장미'를 말했고, 다른 아이는 '행복'을 말했다. 행복으로 됐다. 현서는 갈 때 "행복아 안녕. 내일 만나! 꼭 살아나"  너무나 따뜻하게 말했다. 어쩌면 1학년 아이가 저리도 따뜻한 말을 할 수 있는가!


    2. 작지만 큰 


    목련 꽃봉오리가 떨어졌다는 일은 아주 작은 일이지만 '행복이'는 어제 오늘 사이에 아이들 마음 속에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아침에 '행복이'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행복이를 화분에 심었고, 오늘도 물을 갈아주고 햇볕에 놓기로 했다. 


    나 나름으로 떨어진 목련 봉오리를 살리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자료가 없다. 대부분 목련 꽃을 따서 차로 우려먹는 방법에 대한 앎을 나누는 자료다. 목련 꽃 봉오리가 떨어진 건 아주 아주 작은 일이다. 보통 그냥 지나치게 된다. 우리도 지나쳤다면 이 이 떨어진 봉오리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우리 반 양아이린이 그 떨어진 봉오리를 보았고, 그 봉오리는 양아이린 눈 속으로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인터넷에서 활짝 핀 목련꽃 사진을 검색하여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원래 행복이는 이렇게 될 거였어요." 내가 말하니 아이들은 "행복이가 꽃 피면 좋겠어요." "목련 꽃이 정말 예뻐요."라 말한다. 이번에는 행복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행복이를 화분에 꽂아 놓은 사진이다. 크게 확대해서 보여주었다. 봉오리가 살짝 열려있는 끝이 이미 갈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목련 사진과 행복이 사진을 바꿔가며 몇 차례 보여주었다. 


    "행복이는 이렇게 꽃 피려고 한 겨울을 견뎠어요. 봄이 왔고 이제 하루 이틀만 더 견디면 그 꿈을 이루는데 떨어진 거예요." 


    이보다 훨씬 큰 뜻을 가진 일들도 나와 이어지지 않으면 절실함이 없다. 반대로 이렇게 작은 일도 나와 이어지기만 하면 큰 값을 갖게 된다. 4월 1일이되어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며 좋았던 점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아이들이 '행복이'를 이야기 했다. '행복이'는 우리와 이어진 것이다. 


    "저 목련 나무와 매실나무는 우리반이 부르는 노래를 가장 많이 들은 생명이에요. 이 세상 어떤 사람 어떤 동물 보다도 우리 노래를 많이 들었을 거예요. 저 나무들이 우리를 그렇게 잘 안다면, 우리도 저 나무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4월 1일에 매실 꽃이 몇개 폈는지 목련은 얼마나 피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을 거예요. 이따 나무 보러 나갈까요?"


    점심 먹기 15분 쯤 일찍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다른 것보다 나무에 마음이 달라 붙었다. 보통 나무나 꽃을 보자고 나오면 아이들 눈은 거미와 지렁이와 놀이터에 붙는데, 오늘은 적어도 10분은 아이들 눈과 마음이 나무에 붙었다. 이건 도덕 설교를 하거나 무서움으로 옥죈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 마음속에 저 나무가 들어왔기 때문일 거다. 


    오늘 집에 가는데 "행복아 잘 있어. 월요일에 보자."고 그렇게 다정하게 인사하는 아이들이 많았다.